금감원장, 李대통령 복심 중 복심
기금위 재직 당시 한진그룹 주주제안 주도
국민연금 對기업 첫 경영 참여로 기록
포스코·CJ도 겨냥…재계 위원과 설전 사례도
국민연금 사외이사 추천 안건 제안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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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등장에 금융권은 물론 재계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이란 점이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금융권 또는 재계와의 접점이 그리 많지 않았던터라 베일에 쌓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게 될 핵심 인사인만큼 그가 금융권과 재계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관심이 쏠린다.
1964년 서울 출생인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18기) 동기다. 과거 대통령과 관련한 사건의 변호인으로 활동한 바 있는 측근 중 한 명이다. 2010년도엔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선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사회복지 및 연금개혁 등에 전문성이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참여연대의 추천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2018~2022년)으로 활동했던 이력은 그의 행적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시기이다. 공개된 발언들을 살펴보면 기업들이 부담을 가질만한 요소들이 다수 포착된다.
2019년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횡령·배임 논란이 일었던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칼 이사 자격을 문제 삼은 바 있다. 국민연금은 당해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자격을 강화하는 주주제안(▲이사가 이 회사 또는 자회사와 관련하여 배임ㆍ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에는 즉시 이사직을 상실한다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로부터 3년간 이 회사의 이사로 선임될 수 없다 등)을 했다.
이찬진 당시 기금위원의 주도로 시작된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은 주총을 통과하진 못했으나, 국민연금이 기업에 직접 주주제안을 하고 기업 경영에 참여한 첫 사례로 여전히 회자된다.
"대한항공, 한진칼 관련 대주주의 주주가치 훼손행위에 대한 경영상의 책임문제에 대하여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조치를 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시민사회계의 여론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서 말씀을 드린다"(2018년 이찬진 위원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에 회람한 메일 내용중)
당시 기금위 내부에선 적지않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은 직접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당시 경총은 "노동·시민사회 단체가 사주들의 이사 연임 반대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요구한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여기에 영향을 받아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 "기금위원 의견 검토결과를 집계해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여부를 결정한다면 기금위 의사결정 방식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우려가 있다"(2019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자료 발췌)며 강하게 반발했다.
2021년 1월, 기금위 1차 회의에선 이찬진 위원은 국민연금에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위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차원에서 중대재해나 기후변화 등과 관련해 장기간 개선 되지않는 기업에 대해 기금위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2021년 1차 기금위 회의록 발췌)
이 과정에서 또 재계와 충돌했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추천 위원인 이경상 전 위원은 "해당되는 기업의 입장에선 중요한 문제인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경총을 대표하는 이상철 전 위원은 과거 한진칼 주주권 행사와 관련한 이견을 제시하면서 "기금위가 특정기업을 찍어서 조치를 취한다는 것 자체를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고 대단히 유감"이라며 "개별기업에 대한 이런 접근은 그 기업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고 밝혔다.
당시 기금위 회의에선 포스코와 CJ그룹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차도 확인했다. 당시 이찬진 위원은 기금위원들에게 보낸 자료엔 포스코와 CJ그룹에 대한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이경상 위원(상공회의소 추천)은 "기업을 분석할 때 걱정이 되는 게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이찬진 위원님의 말씀을 듣고 포스코가 이렇게 굉장히 환경에 문제가 있는 기업이구나, CJ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문제가 있는 기업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기업에 물어보니) 내용이 완전히 많이 다르다"며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7%가 넘는 거인인데, (주주권 행사 관련) 이런 결정을 하게 되면 시장에는 굉장히 핵폭탄을 터트리게 되는 셈이다"고 했다.
물론 금융감독원장이 국민연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권한은 없다. 다만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며 사외이사 추천, 주주제안 등 주주들에게 힘을 실으려던 과거의 모습이 최근 정부의 기조와도 정확히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재계의 긴장도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오는 24일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2차 상법개정안이 본회의에 오를 전망이다.
이찬진 신임 원장은 취임 첫주 부서별 업무보고를 마쳤다. 다음주 중 향후 운영방안에 대해 임직원들과 공유한다는 계획으로 전해진다. 20일 임원회의에선 "바빠질 것이다", "놀랄 일이 있을 것이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조만간 이 원장의 운영 기조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