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주총 준비만 할 판"…'산 넘어 산' 상법 개정에 재계는 이미 '패닉'
입력 2025.08.27 07:00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安 확정
    경영권 취약한 기업들 외부 공세 늘어날 듯
    주주제안 및 외부 이사 추천에 ‘주총 소집’ 급증할 수도
    기관들 반대하는 ‘시차 임기제’ 카드도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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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재계가 강하게 반발했던 '상법 2차 개정안'이 내년부터 도입된다. 올해만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1차), 집중투표제 도입 및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안(2차)이 국회의 문턱을 넘으며 기업인 단체가 반대했던 법안의 상당수가 현실화 했다. 여기에 여당이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안도 내부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면서 재계의 부담이 상당히 커졌단 평가다.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차 상법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선출할 이사의 수만큼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부여하고, 주주는 특정후보에게 몰아서 표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주주들이 연대해 특정 이사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투표할 경우, 지분율이 작은 주주들도 대주주가 아닌 본인들이 원하는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는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단 취지이지만 경영권을 쥔 입장에선 부담이 상당히 커지는 게 사실이다. 반대로 수 년전부터 한국 자본시장에서 득세하기 시작한 행동주의펀드, 관여주의를 표방하는 투자자들에겐 이사회에 진입해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단순히 시가총액(2조원 이상)으로만 봤을 때 코스피 상장사 약 180곳, 코스닥 25곳이 해당한다. 자산총액으로 따지면 그 대상은 훨씬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경영권은 물론 경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중투표제야말로 재계에서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내용이다"며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법 개정이 급진적으로 이뤄지면서 재계는 여느때보다 혼란스러운 모습이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 도입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상당히 분주한 모습이다. 경영권 지분이 다소 미미한 그룹은 물론이고 과거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받았던 기업들이 그 대상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외 컨설팅회사와 대형 로펌 등에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 시점에선 이사진의 임기를 분산하는 '시차임기제' 도입을 위한 기업들의 물밑 검토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차임기제는 한 해에 이사진의 임기 만료가  집중되지 않도록 그룹을 나누고 각 그룹별로 이사의 수를 정해 분산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선 현대모비스와 기아 등이 도입해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제30기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 이사 중 1그룹에 속하는 이사는 다음 첫번째 정기주주총회까지 2그룹에 속하는 이사는 두번째 정기주주총회까지 3그룹에 속하는 이사는 세번째 정기주주총회까지를 임기로 한다>(현대모비스 정관 발췌)

      기업의 입장에선 한 해에 최소 1인, 많게는 2인까지만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외부 투자자 추천 인사가 이사진에 합류하는 것을 막겠단 취지인데, 이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반대하는 내용이란 점이 변수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도입에 앞서 경영권을 방어를 위한 최후의 수단 중 하나로 '시차임기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데, 정관에 명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 해에 최대 2명 이상 이사를 선임하지 않는 방안을 고안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은 현재 자사주를 의무소각하는 방안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자사주를 매입한 즉시 소각해 유통주식수를 줄여 기준 주주들의 주식 가치를 늘리자는 취지이다. 코스피 5000포인트(p)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

      자사주를 의무소각하는 방안이 실제로 법제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기업들의 긴장도는 한층 높아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자사주는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지만, 반대로 기업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자사주 소각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만큼 기업들은 보다 세밀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내 한 대형증권사 기업금융부문 관계자는 "자사주를 갖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잠재 클라이언트(고객)이다"며 "자사주를 최대한 소각하지 않으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1~3차(잠정) 상법개정과 더불어 최근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은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다. 이미 원청과 하청, 하청의 재하청 구조가 확립돼 있는 제조업 기반의 기업들은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딱히 쓸 수 있는 전략이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철강, 자동차, 조선, 화학 등의 업종을 보유한 기업들은 노란봉투법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6개월의 유예기간이 남아있어 아직은 실제 사례가 등장하지 않은만큼 그저 노심초사하는 모습만 나타나고 있다.

      국내 한 상장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과 실제 사례가 나오지 않은 현재 상황에선 어떤 대책도 세우기 어렵다"며 "근로자들이 금속노조 등 강성 노조에 가입된 기업의 경영진들의 긴장도는 최고조에 달해있는데, 현재로선 노란봉투법을 활용한 노조와의 분쟁에서 우리 회사가 1호가 되지 않길 기도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