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ㆍ현대미포 합병한 HD현대, 한화 이어 美 조선 시장 판 흔들까
입력 2025.08.27 16:17
    한화, 필리조선소 통해 美 조선 시장 선두 서자
    시장 관심은 'HD현대'의 투자 방향에 쏠려
    HD현대重-미포 합병 추진 배경에도 모이는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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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선업이 다시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시장에서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의 구체적 투자 방향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정상 간 회담에서는 뚜렷한 세부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조선업체들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다. 업계에선 결국 MASGA의 키를 HD현대그룹이 쥐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7일 HD현대그룹은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공룡 조선소' 출범을 알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에 선박을 발주할 것", "한국과 협력해 미국에서도 선박을 건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은 역량 부족으로 단기간 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한국 조선업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 직후 한국 조선사들은 일제히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HD현대는 한국산업은행, 서버러스 캐피탈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필리조선소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추가 투자한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비거 마린 그룹과 MRO 및 선박 공동 건조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 인수를 기반으로 한미 조선업 협력의 전면에 서 왔다. 미국 고위 인사의 방문까지 이어지며 '미국발 최대 수혜 조선소'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필리조선소에 대한 추가 투자 발표로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MASGA 최대 수혜주로 꼽혀온 이유다.

      다만 중장기 무게추는 HD현대중공업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가 선제적 투자로 속도를 냈지만, 상선 등 종합적 조선 역량에서 체급이 큰 HD현대그룹의 투자가 필요하단 이유에서다. 미국 역시 HD현대그룹이 본격적으로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와 투자에 나서주길 기대한단 목소리가 많다. 

      HD현대는 이미 미국 조선업계와 여러 차례 협력해왔다. ▲4월 헌팅턴 잉걸스와 방산 협력 MOU ▲6월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와 상선 분야 파트너십 체결 ▲이달 초 미 해군 제7함대 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 정비 사업 수주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 미국 내 조선소 인수 등 직접투자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자회사 합병 추진과 공동 투자 MOU 체결은 한미 조선업 협력을 향한 분명한 시그널로 해석된다.

      HD현대중공업은 HD현대미포를 흡수합병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합병은 HD현대미포의 주주들에게 존속회사인 HD현대중공업 신주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합병 비율에 따라 HD현대미포 보통주 1주당 HD현대중공업 보통주 0.4059146주가 배정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통합 HD현대중공업 출범과 함께 조선 부문 해외사업을 담당하는 투자법인도 설립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을 두고 시장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HD현대미포가 군함 관련 라이선스를 보유하지 않은 만큼, HD현대중공업과 합병해 미국 군함 시장 진출을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위해서는 HD현대중공업의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일본과 중국은 이미 조선소 합병을 통해 '공룡 조선소'로 체급을 키웠다. 중국은 1위 국영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2위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이 합병했고, 일본의 이마바리조선은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 지분율을 30%에서 60%로 높여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합병 추진 배경에는 HD현대미포가 HD현대중공업 자금을 필요로 했거나, 방산 라이선스를 보강해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서는 체급을 키워야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는 각각 별도의 도크를 가지고 생산계획도 따로 운영하고 있어, 실제 사업적으로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자회사 합병에 이어 미국 내 조선소 인수 등 다방면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HD현대는 그간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는 보수적 스탠스를 보여왔지만 확실히 기류가 달라졌다"며 "신흥국 시장 투자와 미국 내 조선소 인수를 동시에 검토하며 전략을 다각도로 짜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HD현대는 미국과 신흥국을 별개의 시장으로 두고 투자 전략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밖에서는 중국과의 조선 패권 경쟁을 의식해 인건비가 저렴한 필리핀, 베트남, 인도 등지에서 생산 거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 HD현대미포는 비나신 그룹과 합작법인 HD HVS를 세워 베트남 조선소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어, 인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진출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 인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는 현지 조선소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에 군함 건조 및 유지 보수에 대한 제재를 열어줄 경우, 미국 내 군함 시장의 규모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건조된 선박은 글로벌 시세보다 비싸게 책정되더라도 안정적으로 소화된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높은 가격에도 미국 내 수요만으로 충분히 흡수될 수 있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의 추가 투자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며 "시장의 관심은 HD현대가 어디에, 얼마의 투자 결정을 내리느냐에 쏠리고 있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시장의 관심은 '선제적으로 움직인 한화'에서 '투자 집행을 고려중인 HD현대'로 넘어가고 있다. MASGA가 단순한 조선업 재건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동맹국 협력을 포괄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HD현대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본격적 투자를 단행할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