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10조원에는 PER 143배 필요…불가능하단 평
10조원 달성 위해선 PSR 8배 이상 필요…플랫폼 평균 5배 상회
해외 패션·이커머스 기업까지 피어그룹 확장, 주관사 전략 분주
-
무신사의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받아든 증권사들이 공모가 산정 도구로 주가매출비율(PSR)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무신사에선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10조원에 달하는 '기대 기업가치'를 맞추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다는 분석에서다.
공모가 산정 공식에 활용할 유사기업(피어그룹) 확보 역시 난관으로 꼽힌다. 무신사와 비슷한 사업 구조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 많지 않은데다, 일반적인 패션ㆍ의류 기업으로 범위를 축소하면 기업가치가 1조원에도 못 미치게 되는 까닭이다.
27일 증권가에 따르면 무신사 RFP를 수령한 증권사들은 오는 9월 중순까지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만큼, 각사별로 총력을 기울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무신사가 제시한 조건이 적지 않지만, 가장 까다롭고 중요한 부분은 단연 몸값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무신사 측이 공식적으로 '10조원'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최소 가이드라인이 10조원으로 굳어진 분위기다. 제안서에서 밸류에이션을 얼마나 높게 가져가느냐가 주관사 선정 경쟁에서 결정적 우위로 작용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무신사 딜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된 증권사들이 예상 시총을 10조원 미만으로 적어내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10조원에 2~3조를 더 더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밸류에이션 접근법은 매출 기반 멀티플이다. 대표적으로 PSR과 매출 대비 기업가치(EV/Sales)가 꼽힌다. 무신사가 가장 최근에 인정받은 시가총액이 3조5000억~4조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두세 배 이상 불려야 하는 상황에서 주가순이익비율(PER)은 사실상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앞서 무신사는 2023년 시리즈C 투자 유치 당시 약 3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불과 2년 만에 눈높이가 세 배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올해 무신사 구주 매출 타진 당시에도 4조원 수준의 밸류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IPO 과정에서 요구되는 10조원과는 격차가 크다.
실제로 무신사가 원하는 수준을 PER로 맞추려면 난도가 높다. 지난해 무신사의 당기순이익은 698억원으로, 이를 기준으로 10조원 밸류를 적용하면 PER이 143배에 달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국내 주요 패션·의류 상장사들의 PER 밴드가 5~10배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괴리가 너무 크다는 평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무신사의 밸류에이션을 10조원으로 맞추려면 PER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며 "현재로서는 매출 기반 멀티플을 활용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증권사들도 PSR이나 EV/Sales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식인 PSR은 성장주 밸류에이션의 대표 지표다. 쿠팡 역시 나스닥 상장 당시 PSR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켓컬리도 상장 준비 과정에서 상대가치 평가법으로 PSR을 적용한 바 있다. 주가를 매출액으로 나눠 산출하기 때문에,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을 평가할 때 적합하다.
다만 PSR을 적용하더라도 10조원 밸류에 도달하려면 최소 8배 이상의 배수가 요구된다.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평균 PSR이 5배 안팎에 머무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어떤 피어그룹을 제시하느냐'가 승부처라는 분석이다.
해외 패션 브랜드나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 중 높은 PSR을 보여주는 회사를 피어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주관사들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다만 패션 기업 중에서도 명품 기업과는 업태가 확연히 다르고, 본사가 위치한 서울 성수동을 기점으로 디벨로퍼로서의 발전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는만큼 피어그룹 선정 자체에 '해답지'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무신사 RFP에 참여한 모든 증권사들이 사실상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PSR 배수를 최대화하기 위해 전 세계 패션 기업부터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까지 샅샅이 뒤지며 피어그룹을 구성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