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확장 노리는 수은...정체성ㆍ전문성 논란 불가피
입력 2025.08.29 07:00
    직·간접투자 벤처기업으로 확대 목표
    법 개정은 야당주도…10개월째 표류
    '생산적 금융' 정책에 여당도 관심
    산은ㆍ기은과 차별화 고민은 더 심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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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수출입은행이 벤처·중소기업 투자를 위한 재량권 확보에 나섰다. 법으로 가로막힌 투자 제약을 해소하고 '생산적 금융' 정책에 발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야당 주도로 진행되며 진척이 없었던 개정안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다.

      다만 이미 벤처·중소기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별도의 국책은행이 있다는 점과, 수출금융 지원이라는 정체성과 큰 관련이 없다는 점, 관련 경험 및 전문 인력 역시 부족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수은법 개정을 건의했다. 벤처기업 등에 지분투자가 가능하도록 투자 범위를 확대해달라는 요청이다.

      현행법 상 수은은 대출·보증이 연계된 사업에 대해서만 지분 투자를 할 수 있다. 직접투자를 진행할 경우 매 건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난 2005년부터 유지된 조건으로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출자업무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업초기 개발비·인건비가 많은 벤처기업 특성 상 대출에 필요한 신용등급을 받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미 대출을 받은 기업이라면 수은을 통해 추가 출자를 받을 유인이 적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지난 20년 간 수은의 직접투자 건수는 11건, 금액은 총 554억원에 그친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21년 5월에 이뤄진 대원전선 전환사채 투자(50억원)로 이미 전액 회수 완료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통 대출은 투자자 구성이 완료된 다음에 이뤄지는데, 이후엔 수은이 낄 자리가 없다"며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사업 초기에 국책은행에서 지원하는 게 생산적 금융의 취지에도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수은은 통상 사모펀드(PEF)로 한정된 간접투자 범위도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현행법에선 자본시장법에 따른 집합투자기구에만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벤처투자법에 따른 벤처투자조합, 여전법에 따른 신기술사업투자조합 등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새 정부가 금융권에 생산적 투자를 강조하면서 법 개정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난달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금융의 역할' 보고서에서 우리기업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수은 등이 맞춤형 금융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중심이 되어 인공지능(AI) 생태계 밸류체인 분야에 전폭적 지원해야 한다"며 "지원방식은 대출, 직·간접 투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관단 대출 등의 방식을 이용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수출입은행의 원활한 정책금융 지원을 위해서는 수출입은행법을 개정하여 투자제약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법 개정에 있어 여야의 의견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이 작년 10월 이미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해당 개정안은 법인 출자 시 '대출이나 보증과 연계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투자 대상을 벤처 기업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에 대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4월 "법인이 수주 이전 사업 발굴 단계에서부터 수은의 직접투자를 받아 효과적으로 수주를 달성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정부 등의 출자로 운영되는 수은의 재정상황 악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금융권에서는 수은의 건전성 지표가 양호하다고 본다. 3월 말 기준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5.3% 작년 말(15.35%) 대비 소폭 감소했다. 다만 기업은행(14.74%), 산업은행(14.13%) 등 타 국책은행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은 출자 사례를 보면 대부분 집행액 이상을 회수했다"며 "아직 국회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투자 한도를 설정하는 식으로 일정 부분 제한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금융권에서는 반대 의견도 감지된다. 성장금융이라는 정책 목표 아래 한국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시중은행, 증권사는 물론 보험사들까지 벤처·중소기업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에까지 벤처투자 길을 열어줄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2~3년전 전만 해도 수출입은행은 자본 부족으로 인해 무역금융 한도마저 걱정해야할 처지였다. 자본 확충에 숨통이 트이며 무역금융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벤처투자로 눈을 돌리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도 나온다. 벤처·중소기업 직접 투자를 전담할만한 인력도, 실적도, 노하우도 없는데다 간접 투자 방식을 택한다면 다른 국책은행 및 시중은행들과 차별화를 꾀하기도 어렵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의 직접투자 성과가 나쁘지 않은 것은 투자 모수 자체가 극도로 적기 때문"이라며 "산업은행과의 차별성을 고민하던 수은이 이번엔 기업은행의 업무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는 따져봐야 할 이슈"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은 관계자는 "성장 잠재력이 큰 벤처나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라며 "기은 등과의 업무 중복보다는 보완의 성격으로 보고 있으며 리스크 관리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