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된다"던 조선업 MRO…연 3.6조 시장으로 판 커진다
입력 2025.09.01 07:00
    조선 3사, 美 해군 MRO 시장 본격 가세
    연 3천억 규모, 향후 3.6조 시장으로 확장 가능
    지금의 '경험치 쌓기'가 향후 수익성 좌우 전망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군함 MRO(정비·보수) 사업은 그간 '수익성이 크지 않은 사업'이란 평가가 있었다. 미국의 각종 제재 법안에 따라 한국 조선사들이 실제로 따낼 수 있는 물량이 제한적이었다. 고선가 선박 건조로 도크가 꽉 찬 상황에서 MRO를 위해 공간을 비워내는 것 또한 채산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기류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미국 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조선업 건조에 대한 규제를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도 MRO사업 진행을 위해 다방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향후에는 연 3조6000억원 규모의 수주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한화오션은 지금까지 총 3건의 미 해군 MRO 사업을 따냈다. 지난해 8월 군수지원함 '윌리 쉬라(Willie Sirah)호' 정비 사업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유콘함' MRO도 수주했다. 이어 미 7함대 소속 보급함 '찰스 드류(Charles Drew)함'의 정기 수리 계약까지 확보했다. 국내 조선사 가운데 가장 먼저 미 해군 MRO 시장에 발을 들이며 사실상 '첫 깃발'을 꽂았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오션이 수주한 3건의 MRO 가운데 한 척은 수익성이 괜찮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나머지는 당장 수익성보다는 향후 입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결국 미국과의 접점을 넓히고 트랙레코드를 쌓으려는 전략적 시도로 해석됐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미 해군 7함대 소속 화물 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의 MRO 사업을 수주했다. 첫 미국 MRO 사업 수주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익성 한계를 이유로 소극적이던 입장이었지만, 태도를 바꿔 본격적으로 입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HD현대그룹은 지난 27일 열린 컨퍼런스 콜에서 2035년까지 37조원의 매출을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매출액의 21%가량이 방산 부문에서 나올 것으로 추산했다. HD현대중공업이 HD현대미포를 흡수합병하는 이유도 방산과 해외 MRO 확대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회사는 "HD현대미포는 1975년 선박 수리 전문회사로 출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수리조선소로 성장했다"며 HD현대미포가 수리조선소였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통상 군함 MRO는 수리조선소에서 수행된다. 

      최근 삼성중공업은 비거 마린 그룹(Vigor Marine Group)과 미 해군의 지원함 유지·보수·운영(MRO)사업에서 협력하기 위해 MOU를 맺었다. 이로써 조선3사 모두 미 해군 MRO 사업에 참여할 '의지'를 확실시 했다. 

      다만 MRO 확대 수주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 연방법이다. 현행 법은 "미국이나 괌을 모항으로 하는 해군 함정은 미국이나 괌 외부 조선소에서 정비·수리·유지보수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조선소가 현실적으로 수주 받을 수 있는 MRO 사업은 일본에 모항을 둔 7함대 정도로 추산됐다. 그것도 비전투함 위주였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추산한 2025년도 MRO 발주 추정치 자료에 따르면 7함대 외주 MRO 예산은 연간 약 85척, 7000억원 수준이다. 이 중 비전투함 규모만 추산해보면 척수는 35척, 연간 약 3000억원 규모가 전망됐다. 

      실제 한국 조선업체가 받아올 수 있는 물량은 그보다 적었다. 올해만 해도 미 해군 발주 35척 가운데 한국 조선사가 가져간 건 4척에 불과했다. 일본은 오랜 기간 미 해군과의 협력 경험으로 일정 수준의 MRO 수주를 받아왔다.

    • "돈 안된다"던 조선업 MRO…연 3.6조 시장으로 판 커진다 이미지 크게보기

      미국에 모항을 둔 함대에 대한 MRO 수주가 가능해지고, 한국 조선사들이 전투함까지 정비·보수할 '자격'을 확보한다면, 연간 약 3조6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HD현대는 해외 생산 거점 확장을 추진 중이며,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 인수를 통해 군함 건조 시장 진출 절차를 밟고 있다. 

      미 해군의 2025 회계연도 예산 요청서에 따르면, 함정 유지·보수(Ship maintenance) 예산은 총 19조원(약 148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서 해군 조선소 예산(약 76억 달러), 군수 장비 및 보급품 조달비용(약 44억 달러)을 제외하면 외주 MRO 예산은 연간 약 3조6000억원(약 28억 달러)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업체들의 향후 실적 추정치를 봐도 그렇고, 향후 전투함까지도 수리 및 건조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며 "MRO로 연간 조 단위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면 꾸준히 물량을 이어가면서 매출의 한 축으로 삼고, 동시에 미국과의 접점도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수익성에 의문을 품는 시선도 있다. 조 단위의 시장이 열려도, 군함 MRO는 결국 군수지원함·전투함 건조를 위한 교두보일 뿐 자체적인 수익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과의 협력이 커질수록 MRO는 사실상 '서비스' 성격이 강해질 것"이라며 "국내 조선 3사가 도크 활용 효율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MRO는 국내 수리조선소에 외주를 맡길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정부는 조선업 협력을 위해 현재의 제재 방안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번스-톨레프슨법(Byrnes-Tollefson Amendment)'을 행정명령을 통해 우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행정명령을 통해 해당 법안을 우회할 수 있게될 경우, 지금까지 금지돼 온 전투함 블록 생산이나 군수지원함 전체 건조까지도 한국 조선소에서 맡을 수 있게될 전망이다. 업계는 MRO 사업 수주 확대에 제약이 되고 있는 미국 연방법 조항이 완화될 수 있을지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