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ELS 과징금 '조 단위 부담' 긴장 고조
실제 조 단위 제재는 부담…감경 가능성도 거론
제재심 시기·과징금 산정 방식, 관건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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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은행장의 '첫 회동' 자리에서 소비자보호를 강조하는 발언이 나오자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감원이 실제 은행권에 조 단위의 과징금을 부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20개 국내은행 은행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14일 취임 후 처음 갖는 간담회에서 이 원장은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공급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손쉬운 이자장사'를 비판했다. 이후 간담회에서 은행장들의 질문 또한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위험가중자산(RWA) 산정 방식 개선에 집중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생산적 금융'과 함께 ELS 불완전판매와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홍콩 ELS 과징금 제재심의위원회를 기다리고 있는 은행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상 과징금 산정 기준을 '판매금액'으로 적용하기로 하면서 은행들이 조 단위 과징금을 부담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여기에 과태료까지 부과할 경우 은행권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총 판매액은 은행권에서 약 16조원에 달한다. KB국민은행이 8조1972억원, 신한은행이 2조3701억원, NH농협은행 1310억원, 하나은행 2조1183억원, 우리은행 413억원 등이다.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할 경우 ELS 계약 전체 금액의 50% 이내로 과징금을 매길 수 있는데, 단순 계산 시 국민은행은 최대 3~4조원의 과징금을 물게 된다.
물론 금감원 제재심 이후 금융위가 정례회의를 열어 과징금을 최종 확정하긴 한다. 그러나 금감원에서 정한 내용을 금융위에서 뒤집을 명분이 크지 않고, '봐주기' 논란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특성상 사실상 금감원 원안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실제 금감원이 조 단위 과징금 결론을 도출하긴 쉽지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이자놀이' 비판과 함께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는데, 과징금이 운영리스크로 분류되면 자본비율이 크게 하락해 기업대출이나 투자에 사용할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집행기관인 금감원은 과징금 도출 시 금융위에서 정한 '판매금액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은행들의 홍콩 ELS 자율배상에 따른 제재 경감 등 과징금 규모를 낮출 여지는 충분히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아울러 금감원이 내린 결론을 금융위가 뒤집기 어렵다는 점 또한 금감원이 '무리한' 과징금 제재를 내릴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결국 제재심 안건 부의 전에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의 의견 조율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투자자 피해를 보상한 부분에 대해서는 (과징금에서) 빠지는 부분이 있어서 이를 제외하면 금액이 낮아진다"며 "아울러 금소법 별표에 재량이 가미되는 부분이 있어 실무자 단에서는 어렵겠지만 의사결정자 단에서는 조율을 해서 과징금을 낮출 가능성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제재심 날짜에 따라 과징금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제척기간인 5년이 지나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는데, 지난 2020년 ELS를 불완전판매한 은행들은 제재심 및 금융위 확정이 내년으로 미뤄질 경우 2020년 판매분에 대해서는 과징금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과징금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의식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금감원 제재심을 열고 올해 내에 금융위 최종 확정을 내리는 등 절차를 앞당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까지 관련 제재를 확정짓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 제재심 이후 금융위 확정까지 통상 2~3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원안을 만들어 제재심 안건으로 부의하고, 제재심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선례를 살펴보면 제재심 의원들이 금감원의 초안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사실상 제재심 원안이 과징금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셈인데, 다음 달까지 이를 마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감원 입장에선 사실상 다음 주에 제재심 안건을 부의해야 9월 말에 제재심을 개최할 수 있다. 제재심을 개최하기 3주 전에 금융사들에게 사전 통지를 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그러나 제재심 안건에 금융사들이 열람 가능한 과징금 규모, 산출식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사실상 이를 부의하게 되면 과징금을 확정짓는 셈이란 설명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ELS 과징금 관련 쟁점이 너무 많은 데다 관련 지침도 명확하게 내려온 상황이 아니다"라며 "올해까지 최종 결론을 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