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위한 사업분할·인력해고까지 쟁의 대상 포함
사실상 '설비만 없애라'…감축효과 대폭 희석 불가피 평
JV 논의에도 찬물…증폭될 노사갈등까지 나눠지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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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조정 첫삽을 뜨자마자 여당이 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했다. 민간이 알아서 줄일 방안을 짜오라 주문해놓고 난도를 올려버린 형국이다. 해고 없이 설비를 감축하는 게 구조조정에 무슨 소용이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회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에 대해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 시행까지 6개월 유예 기간이 남았는데 노동계는 관련 법적 조치와 집회를 기획하고 경영계는 강한 우려를 표하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가리킨다. 사용자 책임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포괄적으로 확대하되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게 주요 골자다. 법조계에선 개정안이 공포, 시행되면 정리해고· 구조조정·인수합병이나 사업분할 등 경영판단 전반이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직전 발표된 정부의 석유화학 구조 개편안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공급과잉 상태인 납사분해설비(NCC) 370만톤 감축 목표치를 제시했는데, 여당이 구조조정에 필요한 조치 상당수를 봉쇄했다는 것이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노동쟁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으로 두루뭉술하게 넓혀버리면 NCC 폐쇄를 앞두고 물적분할, 출자하는 것까지도 다 허락받고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라며 "실용주의 노선이 아니라 다분히 이념적인 법안이라서 당청이 따로 놀고 있다는 반응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인력은 그대로 두고 설비만 줄이랴는 얘기 아니나는 반응도 나온다. 이번 개정안으로 하청·파견회사는 물론 자회사나 계열사 등 간접 고용 근로자까지 원청, 모회사와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린 터라 인력 구조조정을 설득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인력을 줄이기 어렵다면 NCC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 효과도 희석이 불가피하다. 통상 NCC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 중 인건비 비중은 25~40% 선으로 알려져 있다. 공장 폐쇄로 감가상각을 중단하고 인건비를 줄였을 때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 100이라면 인력을 자르지 못했을 때는 60~75 정도로 효과가 줄어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구조조정에서 잠정적으로 폐지(스크랩) 대상에 오른 NCC 대부분은 석유화학 업체들이 오래 굴려온 노후 설비들이다. 구형 NCC의 경우 공정이 훨씬 복잡해 생산능력 대비 투입 인력 규모가 큰 편으로 전해진다. 범용 외 다운스트림이나 스페셜티 사업 비중이 낮은 업체들은 인력을 전환 배치할 대안도 마땅치 않다.
조금씩 진전을 보이는 합작법인(JV) 설립 논의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공장 폐쇄로 발생하는 재무적 손실은 분담할 순 있어도 노사 갈등까지 나누고푼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도 구조조정 최일선으로 분류되는 여수 산단 등지에선 대량실직 사태를 겨냥한 움직임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 활동 범위와 권리가 획기적으로 강화된 터라 제2의 쌍용자동차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도 10개사 참여 강제할 수단도 없어서 맹탕이란 말이 나왔는데, 노란봉투법까지 내놔서 이게 지금 되겠냐 하는 분위기다"라며 "다 같이 빅배스로 털고 고정비 줄이고 사업성 복원시키자던 게 갈수록 눈치싸움만 심해지게 됐다. 정부가 목표한 대로 가기 어려워 보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