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오피스 2~3개 몸값에 전력마피아 횡행…데이터센터 투자의 그림자
입력 2025.09.02 07:00
    취재노트
    자금 몰리는 데이터센터, 인허가·민원으로 지연
    통신사·운용사, 시장 진입 견제에 인력 쟁탈전까지
    1MW당 200억원 수준 공사비…전력 확보가 사업 관건
    과열 투자, 수도권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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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금 데이터센터는 부동산 시장의 마지막 블루오션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력과 인허가 문제, 그리고 한전 출신 '전력 마피아'들의 영향력이 겹치면 제2의 물류센터를 넘어 제2의 지식산업센터 사태가 될 수 있다."(부동산 업계 관계자)

      카카오, SK, LG, 삼성 등 주요 대기업부터 코람코·이지스·퍼시픽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까지 최근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AI 열풍에 힘입어 미래 먹거리로 인식되면서다. 수도권 개발 부지, 전력 수급권 확보를 두고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투자업계 안팎에서는 "대규모 자금이 데이터센터로 쏠리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오피스 시장 한계가 뚜렷해지자 운용사들은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전담 조직을 꾸리고, 통신사 출신 인력까지 대거 영입하며 새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한 대형 운용사 고위 임원은 "국내 오피스 시장에선 더 이상 확장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데이터센터 개발을 위해 IDC 부서를 따로 만들었고, 관련 인력 대부분이 통신사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과열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올해 상반기 SK브로드밴드는 판교 데이터센터 인수를 위해 5000억원 규모의 공모채 발행에 나섰고, LG유플러스도 파주 LG디스플레이 부지를 전환해 데이터센터를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KT 역시 10여 곳 이상의 데이터센터 사업을 추가 검토하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통신사 입장에선 데이터센터가 과거 유선망 인프라 구축과 비슷한 사업 구조"라며 "현금도 있고 마땅한 신사업도 없으니 데이터센터에 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운용사와 건설사 입장에서는 통신사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부동산 운용사 임원은 "엣지급 데이터센터를 지으려 해도 통신사와 협의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사업 추진이 부담스럽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운용사는 통신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이 있는 인력을 영입하거나, 다른 자문사를 활용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 운용사들은 상대적으로 소형인 엣지급(10~50MW) 데이터센터를 기웃거린다. 엣지급 데이터센터는 규모가 작아 초기 투자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인허가와 민원 대응이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 각 지자체별 규제 기준과 환경 요건이 상이하고, 주민 민원이 발생할 경우 착공 자체가 지연되거나 계획 변경을 강요받을 수 있다. 소음, 교통 영향과 관련한 민원이 쏟아지는데 작은 부지일수록 주변 환경과의 충돌 가능성이 커 제약이 많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허가를 조율하고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이 복잡해 하이퍼스케일급보다 오히려 진행이 더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 1위 사업자 SC제우스조차 한국 진출 과정에서 고전 중이다. 부천에서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민원과 전력공급 한계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사업비용 측면에서도 오피스와 차원이 다르다. 업계에선 1MW당 공사비가 약 2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40MW급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데만 80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그 돈이면 강남권 초대형 오피스 빌딩 2~3개를 지을 수 있다"고 비교했다.

      그럼에도 데이터센터 사업의 핵심 관문은 전력 공급이다. 국내 데이터센터 업계에선 "한전 출신이 아니면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한국전력공사·한국전력기술 출신 임원급 인사 10여명이 삼성물산, 현대건설, 비에이치아이, ㈜유신, 법무법인 대륙아주 등 데이터센터 관련 분야로 이직했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전 출신이 세운 시중의 데이터센터 컨설팅 회사만 7~8개 된다"며 "김앤장, 광장 등 대형 로펌에 맡겨도 한전 출신 후배들을 연결해주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가장 큰 우려는 과열된 투자 열풍이 곧바로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 주요 지역은 이미 대형 프로젝트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남양주만 해도 2028년 변전소 완공을 전제로 160MW 규모 부지가 잡혀 있고, 카카오와 우리금융이 상당 부분을 선점했다. 나머지 물량을 두고 다수의 기업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AI 데이터센터 사업도 자칫 전시행정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임차 기업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도 "투자 열풍이지만, 이익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류센터 붐이 끝내 '제2의 지식산업센터'로 번졌듯, 데이터센터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