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 "2주 클로징”내세우며 수임 경쟁 격화
투자 리스크 검증 소홀 우려에 투자자 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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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EB(교환사채) 발행이 몰리는 가운데 거래를 수임하기 위한 증권사들의 경쟁이 불붙었다. 증권사들은 발행사에 "2주 안에 끝내겠다"는 조건까지 내걸고 있다. EB 거래가 증권사 IB의 하반기 핵심 먹거리로 꼽히는 만큼, 경쟁사보다 빠르게 딜 선점을 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3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DB하이텍은 자사주를 활용해 약 1000억원 규모의 EB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하림지주 역시 보유 자사주를 기반으로 1500억원 규모 EB 발행을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에스엔에스텍, 국도화학, SKC 등 다양한 기업들이 EB 발행을 결정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법제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사주를 현금화하려는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이다. 자사주를 줄여야 한다면 EB 발행이나 블록딜(장외 대량매매)을 통해 현금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에 증권사들은 EB 거래를 하반기 최대 먹거리로 보고 거래 수임에 사활을 걸고 있다. IPO(기업공개)는 중복상장 이슈로 대형 딜이 뜸하고, 채권은 경쟁이 과열된 상태다. 부동산 금융은 업황이 침체하며 IB 먹거리가 줄어들었다.실제로 증권가에는 자사주를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한 상장사들의 현금화 문의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일부 증권사들은 기업들에 “잔금납입, 즉 딜 클로징까지 2~3주 안에 끝내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통상 증권사 내부적으로 재무 파악, 간단한 실사, 리스크 검토 등에 한 달 가량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제안인 셈이다.
특히 EB는 표면금리(쿠폰금리)와 만기이자율이 모두 0%인 소위 ‘빵빵채권’인 만큼, 사실상 주가 상승에 기대를 거는 구조라 기본적으로 '투자 리스크 판단'에 최소 3~4주는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이 때문에 메자닌 투자처를 찾는 운용사들은 “딜을 직접 수임할 기회를 증권사에 번번이 빼앗긴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기업들 역시 잡음을 피하기 위해 빠른 발행을 선호한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말 3200억원 규모 EB 발행을 추진했지만 결국 중단했다. 목적과 사용처가 불분명했고, 발행 대상조차 공시하지 않아 시장의 의문을 키운 탓이다. 이 사건 이후 기업들 사이에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려 '빨리, 조용히' 거래를 마무리하자는 기류가 있다.
증권사들은 EB를 총액인수한 뒤 곧바로 기관에 재매각(셀다운)하며, 이 과정에서 수수료 수익을 확보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발행기업 주가 변동성은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에 기업 리스크 자체보다는 투자 수요 확인과 신디케이션 성사 여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다만 속도전에 매몰될 경우 투자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최근 발행되는 EB는 채권으로서의 실익이 거의 없는 ‘빵빵채권’인데다, 교환가액이 현 주가 대비 15~20% 할증돼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주가가 발행가 아래로 떨어지면 손실 위험이 있다. 경영권 방어성 파킹딜까지 섞일 경우 투자자들이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올해 최대 먹거리로 EB를 점찍은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수임 경쟁에 치열할 수밖에 없지만, 과연 투자자에게도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