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뜬 '대관 전문 회사'…입법리스크에 주연 부상한 국회보좌관들
입력 2025.09.05 07:00
    국회 보좌진 출신 직접 대관 전문 회사 설립
    스타트업·중소기업 중심 입법 대응 수요 급증
    대기업·PEF, 로펌보다 국회 경험자 영입 늘어
    불확실성 속 수비 아닌 선제적 네트워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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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예전엔 로펌만 바라봤는데, 요즘은 국회 보좌진 출신이 훨씬 잘 나가요."

      여의도 인근 대관(對官)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정치 리스크, 특히 입법과 관련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은 정치권과의 접점을 더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좌진 출신들이 모여 세운 '대관 전문 회사'까지 등장했다.

      그간 여의도 출신 보좌진들의 대관 무대는 로펌이었다. 로펌이 사건을 수임하면 보좌진 출신들이 '네트워크 담당'으로 투입됐고, 약 20~30%를 성과 인센티브로 챙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로펌 하청 인력이냐"는 불만이 커졌다. 실제 정책·입법의 물줄기를 움직이는 건 자신들인데, 간판은 늘 로펌 몫이었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판이 달라졌다는 분위기다. 전·현직 보좌진들이 모여 아예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컨설팅 간판을 내세웠지만, 핵심은 입법 동향을 읽고 대응하는 대관 전문 조직이다. 한 팀은 이미 법인을 세웠고, 다른 사람들도 창업을 준비 중이다. 과거처럼 국감 시즌에 단기 투입되는 역할이 아니라, 상시 대응을 내세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처럼 제도권에서 인정된 로비스트 제도가 없다 보니 표면적으로 대관 업무 담당을 내세우지는 않고, '공공 컨설팅 업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라며 "하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기업들의 대관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고객군은 뚜렷하다. 대관 전담 임원을 두기 어려운 스타트업·중소기업들이다. 법안 하나로 사업모델 전체가 흔들릴 수 있지만, 로펌에 수억원을 지불할 여력은 부족하다. 이 틈새를 보좌진 법인들이 파고드는 구조다. "대관은 이제 보험"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기업들도 인사를 통해 대응 방향을 바꾸고 있다. 쿠팡은 올 들어 대관 조직을 사실상 전면 교체했다. 대통령실, 공정위, 국회 보좌관 출신 등 10명 안팎을 새로 영입했다. 과거 김앤장 출신 변호사들이 법무팀 등에서 대관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보좌진 출신이 전면에 섰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에서는 "쿠팡이 여의도와 정부 라인을 동시에 겨냥한 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쿠팡은 새벽배송 규제, 노동 이슈, 온라인 플랫폼 과세 문제 등으로 정치권 도마에 자주 올랐다. 대응의 최전선에 국회 경험자를 배치한 셈이다.

      배달의민족도 상황은 비슷하다. 을지로위원회와 갈등을 빚으며 '갑질 플랫폼'으로 몰리자, 고민정 의원 보좌관 출신을 대외협력실장으로 영입했다. 동시에 소액 주문 수수료 면제, 라이더 안전 대책 등을 발표하며 여론 관리에 나섰다. 과거처럼 문제가 터지면 로펌에 의존하던 방식과 달리, 내부에 정치권 사정을 아는 인물을 두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형태를 택했다.

      넥슨은 리스크 요인이 더 다양하다. 노조와의 갈등, 상속세 문제, 블록체인 신사업 정체에 국회 차원의 게임 규제 논의까지 겹쳤다. 최근 노란봉투법 논의 등으로 원청 책임이 강화되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최근 여당 보좌관 출신을 대관 임원으로 영입한 것도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넥슨은 입법 리스크에 직접 노출된 상황"이라며 "대관 창구 확보가 사실상 필수였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국내 대형 PEF들은 보좌관 출신 대기업 대관들에게 연락하며 담당자 영입을 모색 중이다. 일부 글로벌 PEF들은 최근 홍보(PR) 대행사에 "국회 대응도 맡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부 PR 담당자들은 직접 입법 과정을 공부하며 대관 기능을 흡수하려 하고 있다. "투자 대상 기업이 입법 리스크에 걸리면 펀드 전체 수익률이 흔들린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로펌의 입지가 예전만 못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화우가 국감 대응을 전담하는 팀을 신설해 솔루션을 내세웠지만, 시장에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법적 대응을 위해 로펌을 찾지만, 일각에서는 "국회 경험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조직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판단도 한다. 

      한 대기업 대관 임원은 "로펌은 법률 해석과 소송 대응에는 강점이 있지만, 정치권 물밑 흐름을 읽고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단순히 수비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관계를 쌓고 네트워크를 활용해 공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경은 명확하다. 올해만 해도 상법 개정으로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장치가 약화되면서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 폭이 좁아졌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 배당 제한 강화 등도 맞물리며 재무적·주주 대응 부담이 커졌다. 노란봉투법 논의와 근로자 단체협약 강화로 원청 책임이 확대됐다. 외부 인력과 용역·파견 노동자 관리까지 기업의 책임 범위가 넓어지면서 실무 부담과 잠재적 리스크가 동시에 증가했다. 

      여기에 김건희 특검 등 정치적 변수까지 얽히면서, 기업들은 "하루아침에 게임의 룰이 바뀔 수 있다"는 긴장감을 체감한다.

      대관을 두고 정경유착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요즘 현장에서는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다른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과거처럼 특정 정치인을 상대로 로비하는 건 오래된 방식"이라며 "지금은 법안 흐름을 빨리 읽고 대응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결국 대관이 특정인을 상대로 한 접촉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줄이는 관리 장치로 자리 잡았는 설명이다.

      대관 시장은 지금 재편의 초입에 서 있다. 로펌의 영향력은 줄고, 국회 경험자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고 있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글로벌 PEF까지 새로운 창구를 찾는다. 여의도는 경영 전략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 

      앞선 정치권 관계자는 "대관 전문 법인의 등장은 단순한 창업이 아니라 시장 구조 변화의 신호탄"이라며 "누가 이 흐름을 얼마나 빨리 흡수하느냐가 생존을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