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강제는 소급입법 아닌 규정 부활?…상법개정發 혼란 더 거세진다
입력 2025.09.05 07:00
    與 발의 개정안 전부 '기보유 자사주'까지 소각 강제
    '소급입법으로 재산권 박탈하면 위헌' 지적 나오지만
    14년전 없앴던 처분규정 되살리는 부진정소급 반박
    "취지에도 안 맞고 디테일은 시행령에 퉁" 혼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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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 논의를 본격화했다. 법안이 통과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핵심 쟁점은 원래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까지 일정 기간 안에 소각하도록 한 부칙 조항이다. 법조계에서도 해석이 엇갈리며 혼란이 커지고 있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통상 상법을 개정할 때는 앞으로 발생할 문제를 어떻게 다루겠다고 규정하지, 과거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적용한 사례가 있었나 싶다"라며 "발행사들이 지금도 자사주로 교환사채(EB)를 찍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겠느냐 문의가 쏟아지는데, 소각을 강제하는 게 과연 가능한지부터 모든 게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헌법은 소급입법으로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개정안이 '예전에 사 둔 자사주도 소각하라'고 규정하고 있어 소급입법처럼 보인다. 실제로 개정안의 위헌 소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법조계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2011년 개정상법 이후 공백 상태이던 자사주 처분 의무규정을 새로 신설하는 것이니 부진정소급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진정소급은 과거에 시작돼 현재 계속되는 법률관계의 장래 효과를 새로 규율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형 법무법인 한 변호사는 "과거에 자기주식을 취득한 행위 자체를 위법으로 보거나 처벌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거라 소급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라며 "부진정소급이라면 통상 유예기간을 두고 신뢰보호 원칙만 지키면 된다. 강행처리해도 위헌 시비를 비켜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당 입법 자문 라인도 이런 시각에 가깝다. 원래 상법에선 기업이 보유한 자기주식의 처분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개정 과정에서 '▲기보유 자사주에 대한 처분 문제는 ▲정관에 없으면 이사회가 알아서 결정하도록' 대폭 재량을 부여했다. 3차 개정안이 기보유 자사주에 대한 법률관계를 다룬다는 이유로 소급입법이라 한다면 당시 개정안에도 위헌 문제가 그대로 적용됐어야 한다는 얘기다.  

      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현재 3차 상법 개정안은 14년 전 없앴던 규정을 되살리는 것이라서 소급입법이라는 지적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라며 "있던 걸 없애는 경우나 없던 걸 새로 만드는 경우 모두 상법이 '기보유 자사주'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라고 말했다. 

      소급입법이 아니라는 논리 자체에 무리가 없다하더라도 신뢰보호나 과잉금지 원칙을 두고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많다. 위헌 리스크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처분 규정을 없앨 때와 달리 신설했을 때 재산상 타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증권금융을 담당하는 다른 한 변호사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규정을 풀어줄 때랑 달리 강제 소각은 실질적인 파급이 너무 크다. 회사마다 대응 여력도 천차만별인데 따를 수 없는 법을 만들면 어떡하나"라며 "법률가들도 입장이나 성향에 따라 해석이 첨예하게 갈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라고 전했다. 

      목표 자체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이번 개정안으로 자사주 처분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소각을 의무화하는 게 당초 목적과 동떨어져 있다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현재 상법 개정안은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며 출범한 여당 내 '코스피5000특별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그간 상장기업들이 자사주를 쌓아두기만 하고 주주환원에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소각을 강제하는 게 코스피 5000시대의 해법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크다. 공시 강화나 재매각 제한, 주주승인 요건 등 대안 수단이 많은 데다 당장 주주이익을 증진하는 효과보다 기업 자율성 침해로 발생할 부작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상정된 개정안들이 세부 규정을 대통령령에 미뤄두는 구조인 것도 계속해서 잡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개정안을 강행처리하더라도 대통령령이 나오기까지 의무 소각 기한이나 예외규정을 두고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주당순이익(EPS)이 기계적으로 올라갈 거라 기대하기도 어렵고, SK㈜나 롯데지주처럼 자사주 비중이 25%씩 되는 기업들은 지배구조 조정 비용이 더 발생할 수도 있다"라며 "블록딜 사전공시 규제처럼 법안 발의로 발생할 부작용을 꼼꼼히 따져볼 생각 없이 정치 논리로 일단 법을 찍어내고 부작용은 나중에 시행령이 알아서 수습하도록 퉁치는 구조라서 혼란이 극심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