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발행 67조 대기…하반기 승부처는 장기물"
입력 2025.09.05 07:00
    [배원준 미래에셋증권 채권상품운용본부장 인터뷰]
    고객 자금 기반 운용, 안정성 확보에 집중
    국내 불리한 펀딩 환경, 결국은 역량 싸움
    국채 67조 발행 앞둔 하반기, 장기물 시험대
    WGBI 편입 가시화, 장기물 변동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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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증권사 S&T 부문 호실적을 이끈 건 단연 채권이었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은 대규모 채권 운용 규모와 업계 최상위권 성과를 바탕으로, 채권상품운용본부가 사실상 부문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단기물 선제 대응과 장단기 금리차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한 전략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배원준 미래에셋증권 채권상품운용본부장은 "1분기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단기물 포트폴리오를 작년 말부터 선제적으로 구축했다"며 "재정 확대 이슈로 장기물 금리가 출렁일 때 장단기 금리차(커브) 포지션을 활용한 것도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금리 인하가 하반기에 집중됐고, 올해는 상반기부터 시작됐다. 금리 하락 폭은 작년이 더 컸지만, 올해는 변동성에 기민하게 대응한 덕에 성과가 더 컸다는 설명이다. 배 본부장은 "단순히 금리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장단기 금리가 흔들릴 때마다 포지션을 조정한 것이 주효했다"고 덧붙였다.

      고객 자금 기반 운용…우량 채권으로 안정성 확보

      채권운용본부의 자산 대부분은 대고객 RP, ELS 등 고객 기반의 플로우 비즈니스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는 적정 수준의 프랍 운용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플로우 비즈니스'란 고객 자금이 꾸준히 들어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운용을 말한다. 배 본부장은 "대고객 RP북은 반드시 채권으로 매칭해야 하므로 AAA급 특수채·시중은행채 등 우량 크레딧을 중심으로 안정적 캐리(채권을 일정 기간 보유하며 얻는 이자)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ELS의 경우 시장 축소로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배 본부장은 "코로나와 홍콩H지수 급락 여파로 시장 규모가 크게 줄었다"며 "현재는 CD+15~25bp 수준의 높은 조달 구조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단순 보유보다는 듀레이션 베팅·롱숏 전략 같은 적극적 운용이 불가피하다.

      플로우 자금은 규모가 크고 안정적이지만, 수익성을 담보하려면 운용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RP형 CMA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전체 시장 규모는 2022년 말 23.6조원에서 올해 상반기 38.3조원으로 늘었으며, 이 가운데 미래에셋의 점유율은 약 27% 수준이다. 배 본부장은 "시장 전체가 커지면서 본부 자산 규모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와 경쟁, 출발선 달라도 본질은 '트레이딩' 역량

      배 본부장은 국내 채권운용과 해외 IB들의 구조적 차이도 짚었다. 그는 "국내 증권사는 펀딩 구조가 불리하다. 글로벌 IB들은 달러 자금을 저리로 조달해 운용을 시작하는 반면, 국내는 조달금리가 높아 기본적으로 마이너스 캐리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이는 같은 규모를 운용해도 출발선이 다르다는 의미다.

      또한 해외는 고객 풀에서도 차이가 있다. 배 본부장은 "헤지펀드, 글로벌 기관, 중앙은행 등 거래 상대방이 훨씬 다양하다 보니 거래 기회 자체가 많다"며 "국내는 제한적이지만, 외국인 투자자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외국 중앙은행 등과 장기물 거래를 주고받으며 수익 기회를 확보해왔다.

      그는 "환경 차이가 존재하지만, 최종적으로 수익을 만드는 건 트레이딩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조건이 수익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작은 자원으로도 성과를 내는 게 진짜 트레이딩"이라는 말은, 불리한 펀딩 환경 속에서 국내 증권사들이 얼마나 민첩한 대응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는 곧 다가올 하반기 국채 발행과 금리 환경 변화가 더 큰 시험대가 된다는 점으로 연결된다.

      하반기 변수: 국채 발행·미국 금리·장단기 금리차

      하반기 전망은 녹록지 않다. 9월 이후 약 67조원의 국채 발행이 예정돼 있고, 내년도 예산에 따라 대규모 발행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장기물 수급 부담으로 이어진다. 배 본부장은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정책, 국내적으로는 금융안정과 부동산 가격 흐름이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장단기 금리차 변화도 관건이다. 그는 "하반기 들어 연기금 등 장기 투자자의 수요가 줄고, 본드 포워드(채권을 미래 시점에 사기로 약정하는 거래) 수요도 약해졌다"라며 "30년물 발행 물량이 계속 예정돼 있어 추가 역전(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보다 높은 현상)보다는 정상화(스티프닝) 쪽에 무게를 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략도 달라진다. 배 본부장은 "프랍(자기자본 운용)은 장단기 금리차 변화에 따라 모멘텀을 노리고, RP북은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와 금리차 움직임이 나올 때 포지션을 늘려 캐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프레드란 국채와 회사채 같은 채권 간 금리 차이를 뜻한다.

      WGBI 편입 앞두고, 승부처는 장기물

      내년 초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예정돼 있다. 최대 80조원에 달하는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이벤트다. 배 본부장은 "지표채 위주로 장내 자동화는 진전됐지만, 비지표채(대표 만기 외 채권) 호가 체계는 여전히 촘촘하지 않다"며 "자금 유입이 원활하려면 장외채권 시장의 전산·자동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WGBI 편입은 기회인 동시에, 수급 충격을 관리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내년 전략은 장기물 중심 모멘텀 플레이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는 "올해처럼 단기물 하락을 크게 타는 전략은 어렵다"라며 "대규모 국채 발행과 WGBI 편입으로 장기물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잘 사고 잘 파는 모멘텀 플레이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모멘텀 플레이란 금리 변동이 강하게 나타날 때 매수·매도를 빠르게 반복하며 차익을 얻는 전략이다.

      크레딧 리스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보였다. 배 본부장은 "통화정책이 막바지에 접어든 만큼 스프레드 확대 가능성은 있지만, 정부가 한계기업 부실을 용인해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