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M&A 규모 사상 최대 기록하며 호황
親사업 정책에 베트남·말레이시아 관심도
해외 투자자들, 韓시장 안정성 의문 커져
규제·감독 강화 기조에 투자 위축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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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에서는 “딜이 안 보인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그나마 상반기에는 대기업의 구조조정 거래가 주를 이뤘고, PEF 간 세컨더리 거래 정도만 이어졌다. 하반기에도 시장 분위기는 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사뭇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해외 투자 시장에서는 한국을 두고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비교해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라는 냉정한 평가마저 나온다.
특히 한국과 가장 분위기가 많이 비교되는 국가는 일본이다. 2025년 상반기 일본의 M&A 총액은 사상 최대치인 2,320억 달러를 기록하며 아시아 전체 합계(6,500억 달러)의 약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일본의 M&A 붐이 아시아 시장의 회복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의 사상 최대 M&A 호황은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요구 등 거버넌스 개혁 압력으로 저평가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자사주 매입에 나서 매물로 떠오른 데다, 저금리 환경 속 레버리지 거래가 활발해지고 PEF와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 개입이 겹치면서 딜 물량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글로벌 메가펀드들의 투자 활동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는 평이다. 일본의 대형 M&A 급증에 대응해 씨티그룹은 일본 투자은행(IB) 인력을 10~15% 증원할 계획이다.
8월초 세계 최대 PEF 블랙스톤은 일본 최대 IT 서비스업체 테크노프로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섰다. 성공 시 거래 규모는 약 35억 달러(약 5,070억 엔)로, 블랙스톤이 일본에서 진행한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해당 딜은 일본 내 7번째 PEF 투자이자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거래다.
KKR은 연초 베인캐피탈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후지소프트 지분 약 58%(약 41억 달러)를 확보하며 인수전에 승리했고, 이 과정에서 경쟁이 프리미엄을 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베인캐피탈은 세븐일레븐 모회사인 세븐아이홀딩스로부터 슈퍼마켓·전문소매 등 31개 비핵심 자산을 ‘요크홀딩스’로 분리해 약 8,147억 엔(55억 달러)에 인수했다.
국가별 성과가 극명하게 갈리다보니 글로벌 PEF의 한국 담당자들은 때 아닌 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최근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보고 한국에 대한 안정성에 의문을 가지는 해외 LP들이 많아졌다”며 “이렇다 보니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이 한국에는 오지 않고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더 많이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PEF 내부에서도 일본 담당 팀은 성과 앞세우기 바쁜데, 한국 담당 팀은 인도는 물론이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팀들보다 성과가 저조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본, 인도 등의 시장이 부각된 건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동남아 국가들도 비교적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는 평이다.
베트남도 공산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경제 부양을 목표로 '사업 친화적' 정책을 내걸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가 높아졌다. KKR이 2024년 안과병원 체인 MSG 최대주주로 오른 사례처럼 소비재·헬스케어 분야에 자금이 몰리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와 증시 인프라 개선이 IPO·M&A 활성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도 해외 LP들로부터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수요가 번지면서 데이터센터·해저케이블 등 디지털 인프라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환과 전력망 확충을 앞세워 글로벌 투자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투자 허브’ 국가 전략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다른 글로벌 PEF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는 현재로서는 눈에 띄는 수준의 빅딜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일본이나 인도에서는 지난 1~2년간 꾸준히 거래를 해오는 모습인데, 딜 검토만 하는 한국 시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은 계엄 선포와 새 정부 출범이라는 정치적 불안 속에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데다, ‘노란봉투법’ 시행과 상법 개정 등 규제 강화가 겹치며 M&A와 투자 활동 전반이 한층 둔화되는 분위기다. 정부가 의무공개매수 제도의 내년 상반기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상장사 M&A는 더욱 위축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PEF 업계 역시 관리·감독 강화 기조 속에 활동 제약이 관측된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사례 이후 ‘악덕 자본’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세무조사 등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PEF가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머물렀던 만큼 제도 보완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투자 활동 자체에 제약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대형 하우스로부터는 “차라리 지금이라도 국외로 나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