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주주로 내려올 수도 없고"…상법 개정發 경영권 분쟁 '수 싸움' 격화 예고
입력 2025.09.08 07:00
    3%룰, 최대주주만 묶여…개정안 허점 지적
    한솔케미칼, GS에 지분 넘기며 2대 주주로
    3%룰 피하려는 "꼼수 아니냐" 논란도 제기
    유사사례 드물겠지만 분쟁 기업엔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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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이 의결되면서 재계는 경영권 분쟁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3%룰이 최대주주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주주총회 전 고려해야 할 수 싸움이 한층 복잡해졌단 분석이 나온다. 

      2차 상법 개정안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을 2명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 1차 상법개정에서 도입된 합산 3%룰까지 더해지면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그간 3%룰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특수관계인까지 합해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건 '최대주주'에게만 적용되어서다. 2대 주주 이하부터는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이들이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를 장악할 가능성이 커진단 게 우려 요인이었다. 

      최대주주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스스로 2대주주로 내려오는 '기형적'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한솔케미칼의 조동혁 회장은 보유 주식 2.74%를 ㈜GS에 매각했다. 개인 채무 상환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3%룰 회피용'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유 주식을 넘김으로써 최대주주는 국민연금(13.34%)으로 바뀌었고,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2.33%로 줄어들며 2대주주로 내려앉았다. 최대주주 지위에 남아 있으면 감사위원 선출 때 의결권이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로 제한되지만 2대주주로 내려가면 특수관계인 제약을 받지 않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 전문 변호사는 "GS가 특수관계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시장에선 GS가 한솔케미칼의 우호적인 주주라고 보고 있으니, 개정된 상법에도 허점이 있는 것"이라며 "드러나기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특정 기업에 우호적인 주주가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한단 약정이 있었다면 공시 위반이 될 수 있고 문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일종의 합의가 있을 여지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은 개정 상법을 우회하는 '꼼수'로 비칠 수 있고, 경영권을 스스로 내려놓을 때 따르는 불안 요인들도 적지 않아 극히 이례적인 사례란 분석이 많다. 다만 법적 제약을 회피하기 위해 유사한 사례가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기업들에겐 이번 상법 개정이 최대 변수가 됐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어난 만큼 주총 막판까지 수 싸움이 한층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1년 넘게 경영권 분쟁을 이어온 고려아연과 영풍·MBK 역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상법 개정이 고려아연에 유리해졌단 분석이 나왔다. 법이 시행되면 최대주주인 영풍·MBK 측 의결권이 제한돼 이사회 과반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단순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수가 늘어나며 양상이 더 복잡해졌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한 대형 로펌의 경영권 분쟁 담당 변호사는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이사회 장악이 필요하다면 주주총회 막판에 지분을 우호세력에 넘기고 2대 주주로 내려오면 3%룰을 피해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영풍·MBK 측이 이사회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수를 사용할 수 있단 의미다. 

      이어 "다만 2대 주주로 내려오기 위해 지분을 매각할 때, 특수관계인이 아닌 우호주주에게 지분을 넘겨야한다는 점은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지분을 한 주라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 3자에게 지분을 넘기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져야한단 분석이다. 다른 의안 표 대결에서 오히려 판세가 뒤집힐 수 있다.

      상법상 특수관계인은 6촌 이내 친인척, 지분 30% 이상을 보유한 법인 또는 지분율이 30% 미만이라도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인까지 포함된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상법 개정으로 고려아연과 MBK 간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끝나지 않는 싸움이 됐다"며 "설령 MBK가 최종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지분을 가진 고려아연 관계자들이 이사의 충실의무 등을 근거로 법적 문제를 제기할 여지가 크다. 3%룰과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감사위원을 진입시켜 지속적으로 경영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경영권 분쟁 발발시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문제는 대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스닥 상장사들에서 더 빈번하게 벌어질 수 있다. 코스닥 기업들은 지배구조가 취약하고,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잦다. 코스닥 기업중 감사위원회를 설치해둔 기업들은 상법 개정의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된다. 

      다른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경영권 분쟁은 대형사보다 오히려 코스닥 기업에서 더 자주 발생해 관련 상법 개정 문의가 많다"며 "코스닥 기업 중에도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곳들은 개정 상법의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되는데, 이 시점에 감사위원회를 없애려 하면 또 다른 꼼수로 비칠 수 있어 이에 대해 기업들의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시장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이사회의 다양성과 견제 기능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동시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압력이 증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증권가에선 상법개정안을 바탕으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하는데 분주하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거나 지분 구조가 흩어져 있는 회사들이 대표적인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몇몇 회사는 이사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여러 시나리오도 오르내리고 있다. 

      앞선 변호사는 "시장에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거론되는 기업들은 대부분 이미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고 있을 것"이라며 "분쟁 가능성이 언급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업에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