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 딜에도 '상도의'가 있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입력 2025.09.10 07:00
    Invest Column
    달라진 국내 M&A 환경…경매호가 입찰은 기본
    PEF 인수후보들 넘쳐…"경쟁 유도하기 너무 좋다"
    특정후보만 제안서 늦게 받고, 매각ㆍ인수 쌍방대리 거론되기도
    이해상충 우려…자칫 '포커판' 이 '사기도박판' 전락 우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M&A를 다룬 외신에서 '프로그레시브 딜' (Progressive Deal)이란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콩글리시다. '경쟁입찰' (Competitive Bidding) 정도로만 표현된다. 본입찰 이후 가격경쟁을 계속 붙이면? '멀티플 비딩' (Multiple Bidding) 혹은 '석세시브 비딩' (Successive Bidding)이란 표현이 쓰인다. 

      프로그레시브 딜이 대수롭거나, 특이한 거래방식이 아니란 의미다. 

      국내에선 이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국가ㆍ공공기관이 주도하는, 공정하고 동등한 조건의 경쟁입찰'의 반대개념 정도로 쓰였다. 조달청이 발주한 공공입찰 혹은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기업 매각과 비교하면 쉽다. 

      "정확히 지정된 날짜ㆍ시간ㆍ장소에, 동일한 양식의 제안서를 채운 후 인수조건을 제안하시오" 

      "본입찰 마감 후 추가적인 제안은 불허합니다"

      과거 공공건설 입찰에서 '특정 건설사 밀어주기' 등 특혜시비가 빈번하던 때 이를 방지하고자 도입된 장치들이다. 이게 M&A시장에서도 차용되어 쓰였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또는 대한통운 매각처럼 굴지의 대기업들간 경쟁이 치열했던 M&A들이 법원이나 산업은행 주도로 진행됐던 여파도 있다. 

      어쨌든 "매각주관사가 인수후보들의 가격을 슬그머니, 암묵적으로 유포한다"...라고 알려진, 매너 없고 비신사적인(?) 거래의 대명사다.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투자은행의 상징 골드만삭스가 인수후보들을 각 방에 가둬놓고는 각자의 가격을 흘려대며 매각가격을 올렸다는 미확인 루머로 인해 '골드만 옥션'(Goldman Auction) 혹은 '어센딩 비드'(Asceding Bid)라는 말도 나왔다. 

      "내 회사 내가 마음대로 팔겠다는데?"...신사협정은 사라졌다

      지금 국내 M&A 시장에선 프로그레시브 딜이 디폴트값이다. 시장상황이 달라졌다. 

      첫째, 민간 거래가 대부분이다. 파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상대방에게, 자기가 원하는 가격에 팔겠다는 데 막을 이유가 없다. 정부와 국가기관이 주도하는 거래는 '공공성'이 우선이지만 이와는 다르다. 본입찰을 두 번 하든, 세 번 하든 사적계약과 협상의 영역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붙여도 M&A는 결국 '머니게임'이다. 

      둘째, '파는 사람' 보다 '살 사람'이 늘어났다. 정확히는 사모펀드(PEF)들이다. 

      각 펀드들이 "우리는 운용 철학과 스토리가 다릅니다"라고 주장해 본들? 매각자 입장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 자금 출처가 비슷비슷하다. 모두 국민연금이나 주요 공제회에서 돈을 받았다. 구성원 출신 성분과 커리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같은 대학ㆍ같은 학과, 그리고 특정 회계법인이나 외국계 은행 출신들이다. 

      이러니 생각하는 방식이나 행동 양태도 비슷하다. 매각자 입장에서는 같은 물건을 놓고 비슷비슷한 경쟁자가 여럿 붙어 있다. 경쟁을 유도하기 너무나 좋은 상황이다. 당연히 프로그레시브 딜을 해야 한다.

      똑똑한 체 하지만...사실은 약점(?) 많은 PEF들

      게다가 사모펀드들은 프로그레시브 딜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을 갖췄다. 

      규모가 좀 있는 M&A를 진행하려면. 인수자문사 고용과 회계실사 비용, 그리고 법무법인 비용까지 써야 한다. 못해도 20억원은 소요된다고 전해진다. PEF로서는 거래가 성사됐다면야 이를 '거래비용'으로 처리하면 된다. 펀드 비용이다. 하지만 실패하면? 자본금 얼마되지 않는 운용사가 부담할 부분이 커진다. 결국 운용사 임원들이 십시일반 물어야 한다. 이럴 바에는? 인수가격 더 올려주고 거래를 성사시키는게 남는 장사다. 

      기업들은 신사업을 구상한다고 해서 아무 매물이나 막 사서 계열사로 붙이기 어렵다. 아스팔트 도포 회사가 카스텔라 회사를 인수한다고 하면 주주들에게 M&A시너지를 어떻게 설명하나. 하지만 PEF는 잡다한 영역에서 아주 다양한 회사를 사들인다. 무조건 사들여야 '수수료'를 챙기고, 투자금을 소진하고, 다음 펀드를 만들 수 있다. 

      '워크-어웨이 프라이스'(Walk-away Price)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대기업은 제 아무리 현금가용성이 좋아도 '더 이상 지르지 말아야 할 금액'이 상대적으로 명료하다. 자본조달비용ㆍ예상매출ㆍ기존 계열사 시너지 등을 감안, 마지노선이 결정돼야 한다. 행여 상대후보가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질렀다? 미련 없이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해도 보유현금이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PEF는 당장 가용자금(Dry Powder)이 많아도 투자소진기한이 지나면 없는 돈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바에는 좀 무리하더라도 인수를 성사시키는 게 낫다. 그래야 운용수수료도 나온다. "너무 비싸게 사서 나중에 팔때 어려워지면 어쩌느냐". 그건 나중에 걱정할 문제다. 도덕적 해이를 감안하고서. 게다가 소규모로 운영되는 사모펀드 운용사는 대기업에 비해 가격제안에 대한 의사결정도 빠르다. 

      이런 상대가 여럿 경쟁후보로 들어왔고. 가격차이가 크지 않다? 매각주관사 입장에선 "다른 펀드가 얼마 쓴듯한데, 주당 50원씩만 더 쓰시죠"라고 제안하기 어렵지 않다.

      포커판과 유사…블러핑은 용인해도, 딜러가 '룰'은 지켜야

      이런 상황에서의 프로그레시브 딜은 '포커판'을 꼭 닮게 된다. 상대 패(가격)를 유추하고 블러핑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때론 배짱승부, 때론 소심하게. 블러핑과 심리전이야 말로 포커판의 꽃. 프로그레시브 딜도 같다.

      이러니 "굳이 비싼 돈 들여 실사(Due Diligence)를 할 필요가 있느냐"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어차피 처음 써내는 가격이 의미 없다. 경쟁사 제안가격을 대강 들어본 다음에 그때부터 가격 제안을 올리면 된다. 비싼 회계실사 비용을 들여 적정 인수가격을 산정한 노력이 우스워진다.

      문제는 이 포커판에서 누군가 '선'을 넘을때부터 발생한다. 

      AㆍBㆍC  세 곳의 인수후보를 놓고 이달말까지 입찰제안을 받은 거래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C가 매각주관사에 연락해 "우리는 2주 뒤에 입찰제안서를 내겠다"라고 통보했고, 주관사가 이를 수용했다. 

      A와 B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를 맞은 상황. 이때부터 의구심이 든다. "A와 B의 입찰가격과 조건을 주관사가 다 받아본 상태인데 이게 C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단순히 가격 뿐만 아니다. 민감한 입찰조건과 자금조달 방식, 그리고 금리까지 다 흘러갔다고 치면? C로서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상대 패를 알고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A나 B보다 조금만 더 높은 가격을 줘도 된다. 

      그리고 C로 인수자가 확정되면? 이때부터 온갖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C를 찍어놓고 우리만 들러리를 세운 것이냐" , "이럴거면 뭣하러 경쟁입찰을 했느냐", "입찰에 소요된 비용을 당신들이 책임질거냐" , "기밀유지가 지켜지지 않아 소송하겠다" 등등등.

      게다가 알고 봤더니...때마침 매각주관사가 C의 인수자문까지 같이 겸하고 있었다면? 이때부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제 아무리 차이니즈 월을 쳤다고 해도 이를 순진하게 믿을 이들은 없다. 자문사는 매각주관사로서 수수료를 받고, 또 인수자문사로서도 수수료를 거둔다. 사실 인수자문으로 받는 '성공보수'가 더 많다. 

      이쯤되면 이 자문사가 매각을 주관하는 M&A가 나올 때마다, 사모펀드들은 '인수자문사로도 고용하겠다"고 줄을 설 게 뻔하다.  

      포커판으로 치면...파이브-스터드 카드를 치기로 해놓고는 딜러가 특정 플레이어게만 카드를 2장 더 주고, 상대편 패를 은근슬쩍 알려준데다, 이후 판돈까지 나눠가지는 모양새가 된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깜깜이 포커판을 넘어, 사기도박판 수준으로 전락한다. 

      프로그레시브 딜이란 말조차 쓰지 않는 해외M&A에서조차 매각자문-인수자문 쌍방대리는 엄두도 못 내고 잘 수용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해상충 상황이 뻔히 예상되어서다. 그게 아니라면 차이니즈 월이 정말 믿을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시장이 성숙하고 경험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시도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로그레시브 딜 자체가 잘못됐다라거나 도덕적 재단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러나 포커판에서 블러핑이 다반사라 해도, 룰이 깨지기 시작하면 결국 판 자체가 뒤엎어진다. 노파심일 수 있지만, 지금 국내 M&A시장 여러 프로그레시브 거래에서 알음알음 '위험신호'가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