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M&A 시 소액주주 이익도 고려해야
사용자 범위 넓어지고 쟁의 가능성은 커져
매각도 인수도 부담…M&A 침체 장기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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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법 개정안에 이어 노란봉투법까지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M&A 시장 참여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사업 매각이나 투자유치 시 소액주주, 나아가 직원들의 근로 조건까지 따져야 한다. 투자자들도 소액주주가 많은 상장사나 노동조합이 강한 기업은 꺼릴 수밖에 없다.
법 개정으로 제약 요소가 늘어남에 따라 M&A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 7월 '이사의 충실의무'의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해당 조항은 공포 즉시 시행됐다. 지난달엔 사용자 범위 확대, 쟁의행위 범위 확대,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노동조합법은 공포 6개월 뒤인 내년 초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 여당은 소액주주와 근로자들은 보호하기 위해 상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에 공을 들여 왔다. 절대적 국회 의석수를 등에 업고 있어 법이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에 기업과 이해당사자들은 일찌감치 그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흐름에 거슬러 잡음을 일으키느니 먼저 정책 방향에 협조하겠다는 분위기다. 그만큼 기업의 경영 자율성은 위축되고 선택지는 좁아졌다.
M&A 시장은 침체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시장에 온기가 돌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대형 법안들이 잇따라 통과되면서 기조가 바뀌었다. 상당수 거래가 '소형화'하거나 투자자간 손바뀜(세컨더리)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투자은행(IB) 임원은 "상법과 노란봉투법으로 기업과 사외이사 모두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최근 포스코가 HMM 인수 검토 의사를 밝혔는데 실제 실행하려면 시너지와 사업 전략에 대해 상당한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의 LNG 자산 유동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거래는 작년부터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막판 메리츠금융이 뛰어들어 승자가 됐다. 글로벌 PEF들은 SK이노베이션이 자금을 조달해 자회사 SK온을 지원하는 전략인 반면 메리츠는 일부 자금을 직접 SK온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SK그룹이 논란 부담이 덜한 수를 택했을 것이란 평가다.
한 투자사 임원은 "해외 PEF의 방식은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알짜 자산을 털어 밑빠진 독에 돈을 붓는다고 반발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메리츠금융은 SK온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라 SK이노베이션 경영진과 이사진의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번가 재무적투자자(FI) 문제를 안고 있는 SK스퀘어의 사정도 비슷하다. SK그룹 입장에선 갈등을 해소하길 바라지만 콜옵션을 행사해 FI 지분을 원금 그대로 사주는 것은 SK스퀘어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결정을 할 이사회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예전엔 콜옵션을 행사하느냐가 쟁점이었다면, 이제는 FI의 이해를 얻어낼 수 있느냐가 화두가 됐다.
상장사 매각 난이도는 높아졌다. 이전에는 상장사 최대주주의 '의지'만 있으면 매각을 추진할 수 있었고, 경영권 프리미엄도 홀로 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권 매각 때도 소액주주의 이익이 배제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M&A 시 최대주주가 회사의 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상장사를 갖고 있는 PEF의 회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수자가 추후 공개매수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다른 IB 임원은 "예전엔 매도자 실사는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상법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따지고 있다"며 "소액주주까지 고려하면 인수 비용이 늘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상장사 M&A 난이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의 파장도 만만치 않다. 사용자 범위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넓어졌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는 좁아진 반면, 노동쟁의의 대상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로 확대됐다. 건설·조선·철강·자동차 등 고용 근로자가 많고 노동조합이 강한 산업은 M&A 시장서 외면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 자동차 부품사는 작년부터 사업부 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해외 전략적투자자(SI)가 들어와서 실사를 하고 있지만 매도자 측의 거래 성사 기대감은 크지 않다. 실사를 거듭하고 노란봉투법의 잠재적 부담을 이해하면 섣불리 한국 시장에 진입하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 자회사 현대IFC 매각도 유력 SI가 이탈하며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분위기다.
최근 전국건설노조는 SK에코플랜트의 사업장에 노조원 추가 고용을 요구하며 SK그룹을 상대로 시위에 나섰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 작업도 노조 반발에 부딪혔다. 노조는 합병 관련 자료와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정부는 인수합병 등 사업 경영상 결정이 전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 밝혔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한 기업 M&A 담당 임원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후 실제 케이스에서 법이 해석되고 판례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3~4년은 걸릴 것"이라며 "그 사이 법무법인들만 돈을 벌 것이고 M&A 시장은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하청 업체는 원청 업체를 뛰어넘어 최상위 원청 기업의 대표이사에게 성실히 단체협약 교섭에 나서라 요구할 수 있다. 결국 대기업 대표이사나 경영진 개인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과거 중대재해처벌법처럼 '대표 기피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기업을 경영하는 PEF 운용사 경영진도 불똥이 튈까 걱정할 상황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PEF에서는 노동 문제가 생기면 운용사 경영진까지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오기도 한다"며 "주주사인 PEF까지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 아직 사례가 없으니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