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에 명예회장 추대 된 김남호 전 DB회장…다시 힘 실리는 김준기 창업회장 체제
입력 2025.09.11 07:00
    지분·인맥·조직 장악력 모두 창업주 영향권
    세대교체보다 복귀 구도 뚜렷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DB그룹의 ‘젊은 총수’였던 김남호 전 회장이 만 50세의 나이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한창 경영 전면에서 활약할 시기임에도 ‘명예직’으로 뒤로 물러서자 재계에서는 “사실상 김준기 창업주 체제가 재구축됐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DB그룹은 지난 6월 27일 이수광 전 DB손해보험 사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며 “AI 시대에 맞춘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신임 회장은 81세로, 김준기 창업회장(1944년생)과 고려대 경제학과 동문인 오랜 측근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세대교체라기보다는 창업주 중심의 경영 복귀”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김남호 명예회장은 1975년생으로 올해 만 50세다. 2020년 회장에 오른 지 불과 4년 만에 명예직으로 물러나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그의 자리는 누나인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이 채워가는 모습이다.

      1973년생인 김주원 부회장은 서울예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뒤 결혼 후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룹 경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2021년 DB하이텍 미주법인 사장으로 활동하며 경영에 발을 들였고, 최근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해외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특히 김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선 시점은 김준기 창업회장이 성비위 사건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경영 복귀가 가능해진 2020년 이후와 맞물린다. 재계에서는 “해외 체류 시절 아버지를 곁에서 챙긴 딸이 경영 후계 구도에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DB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DB Inc.의 최대주주는 반기보고서 기준 김남호 명예회장(16.83%)이다. 그러나 김준기 창업회장(15.91%)과 김주원 부회장(9.87%)의 지분을 합치면 25%에 달한다. 단순 지분율만 보면 김 명예회장이 앞서지만, 부친과 누나의 연합 구도에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룹 핵심인 DB손해보험의 경우도 반기보고서 기준 김남호 명예회장이 9.01%를 보유하고 있으나, 김준기 창업회장(5.94%), 김주원 부회장(3.15%), 그리고 김준기문화재단(5%)까지 합치면 총 14%를 넘어선다. 즉, 창업주 측 지분이 더 우위에 있다.

      지분뿐 아니라 인맥 구도에서도 김준기 회장의 영향력이 짙다. 새롭게 그룹 회장에 오른 이수광 회장이 김준기 전 회장의 오랜 동문이자 측근인 데다, DB손보의 정종표 사장 역시 김 회장과 함께 수십 년간 몸담아온 인물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미국 보험사 인수 과정도 김준기 전 회장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안다”며 “지배구조뿐 아니라 금융 계열사 의사결정 전반이 창업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창업주와 그 측근들이 그룹을 다시 장악하는 그림이 분명해지고 있다. 젊은 총수였던 김남호 전 회장이 이른 나이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배경 역시 이러한 구도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DB그룹의 후계구도가 안갯속에 있다는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준기 창업회장의 나이를 고려할 때 후계구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재로선 키는 김준기 창업회장이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