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결국 '여론재판'?…IB 간담회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증권사들
입력 2025.09.12 07:00
    일부 IPO는 지연·철회, 일부는 큰 논란 없이 통과에
    업계 "여론에 따라 심사 문턱 달라져…시장 불확실성 확대"
    10월 거래소 IB 간담회도 구체적 해법 없이 원론 반복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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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 불확실성으로 꼽히는 '중복상장 논란'이 새 정부 출범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조만간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 거란 기대는 크지 않다. 

      금융당국 역시 조직 개편 이슈로 사실상 손을 놓은 가운데, 현장에서는 결국 '여론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다음달 1일 증권사 IB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중복상장 문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될지다. 이전까지 통용되던 '물적분할 후 5년' 등 이전에 통용되던 규칙이 사실상 흐지부지된 가운데, 새로운 기준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증권사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심사 기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다. 같은 지분 구조임에도 어떤 기업은 심사를 통과하고, 어떤 기업은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상반기 SK엔무브는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공동 주관을 맡아 상장을 준비했지만,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이 중복상장 부담을 의식하며 결국 IPO를 접고 SK온과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롯데글로벌로지스와 DN솔루션즈는 유사한 논란에도 예비심사를 통과해 당시 시장에서도 '여론 반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는 항암제 개발 성과를 내세워 상장을 추진했지만, 모회사 주가 급락과 투자자 반발이 겹치며 지난 4월 예비심사 단계에서 좌초됐다. 

      반대로 화장품 업체 청담글로벌은 상장사임에도 자회사 바이오비쥬를 코스닥에 올렸고, GC녹십자 그룹 계열사 GC지놈도 무리 없이 상장에 성공했다. 모두 모회사 지분율이 높아 중복상장 논란이 불가피했지만, 메디컬 에스테틱이나 유전체 분석 같은 사업 차별성을 강조하며 심사를 통과했다.

      이처럼 유사한 구조에도 결과가 엇갈리자 시장의 불만은 커졌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결국 상장 추진 과정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느냐가 최대 변수가 됐다"며 "대기업 계열사는 심사 문턱이 높아지고, 덜 알려진 기업은 상대적으로 쉽게 통과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리스크도 무시하기 어렵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넓히는 것이 골자다. 주주 이익 침해가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중복상장 이슈는 상장 이후에도 불씨로 남을 수 있다.

      한 로펌 변호사는 "주주 이익을 해친다는 논리로 소송이 제기되면 IPO 자체가 리스크가 된다"며 "증권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매력적인 딜이라도 손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복상장을 둘러싼 규제 필요성은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업의 핵심 사업을 자회사로 분리해 상장할 경우 모회사 주주가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되고, 모회사·자회사 주가가 동시에 부진한 사례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LG화학·카카오 등에서 불거진 중복상장 논란은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졌고, 개인투자자의 반발을 촉발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복상장 비율이 지난해 기준 18%로 글로벌 주요국 대비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동안 당국과 정치권이 중복상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요인으로 보고 규제 논의를 이어온 배경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명확한 매뉴얼을 만들지 못한 채 원론적 논의만 반복되고 있다. 올해 들어 거래소가 진행한 세미나에서도 '주주 이익 보장' 같은 추상적 원칙만 제시됐을 뿐, 증권사와 기업이 참고할 만한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정부발 조직개편으로 어지러운 상황이고, 거래소는 수개월째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며 다음 간담회에서도 결국 '원칙론'만 제시될 거란 비관론이 팽배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IPO 실무자는 "논란 소지가 있는 후보군은 애초에 사전에 걸러내는 분위기"라며 "시장 전체가 눈치싸움에 갇히면서 활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