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몸값' 고평가 논란…에쿼티 스토리 입증이 관건
"실력 밑천 드러나는 RFP"…증권사 간 '자존심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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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무신사가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서(RFP) 접수를 일주일 앞두고 있다. 당초 10조원까지 거론됐던 기업가치에 여러 이견이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대기업 계열사 상장이 사라진 IPO 시장에서 올해 하반기 '최대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국내외 주요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배경이다. 특히 전통의 빅3(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에 더해 삼성증권이 유력 후보로 부상하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외국계는 골드만삭스와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네트워크면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몇 곳이 선정될지가 관심이다.
무신사는 오는 19일까지 입찰제안서를 받는다. 지난달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조 단위' 규모가 넘는 대형 딜인 만큼 주관사단만 최소 4곳 이상으로 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등이 후보군으로 참여하고, 외국계에서는 골드만삭스, 씨티, JP모건, 모건스탠리, UBS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번 입찰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삼성증권이다. 리벨리온, 슈퍼브에이아이 등 테크·플랫폼 기업 IPO를 주관하며 업계 내에서 역량을 입증했다. ECM1팀 김민호 이사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테크 IPO 전문성은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무신사 조만호 대표와의 개인적 네트워크도 변수로 꼽힌다. 조 대표는 2022년 삼성증권으로부터 200억원 규모의 단기차입금을 주식담보대출 형태로 조달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양측 간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한 대형사 IPO 실무자는 "브랜드 인지도는 빅3에 못 미치지만, 풍부한 실무 경험과 네트워크가 맞물리며 유력 후보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빅3 역시 만만치 않다. 미래에셋증권은 크래프톤·토스 IPO 입찰전에서 승리한 경험과 올해 상반기 달바글로벌 IPO 흥행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달바글로벌은 수요예측에 2200개 기관이 몰렸고, 상장 후 주가도 11일 장중 기준 16만8400원으로 공모가(6만6300원)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 최영준 무신사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티몬·SSG닷컴 IPO 추진 과정에서 미래에셋과 협업한 경험이 있다.
NH투자증권은 2023년 무신사의 100억원 규모 사모 회사채 발행을 주관했다. 업계에서는 DCM 딜로 맺은 관계가 IPO 입찰전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투자증권도 무신사파트너스와 함께 2021년 펀드를 조성한 이력이 있다. 지분은 이미 매각했지만, 이번 RFP 작업에 ECM 2개 팀을 투입하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외국계에서는 씨티와 골드만삭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무신사 경영진 중 골드만삭스 출신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현재 티안티안 이사(前 골드만삭스 IB 애널리스트), 홍순준 임원(前 골드만삭스 IB 상무) 등이 무신사에 합류해 경영 자문과 기업개발을 맡고 있다.
씨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팜, 카카오뱅크,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대형 바이오·테크 IPO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최영준 현 무신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쓱닷컴에 재직하며 IPO를 준비하던 시절, 상장주관사로 씨티를 선정했었던 점도 거론된다. 당시 최 CFO와 씨티의 민재윤 MD(매니징디렉터)가 상당한 신뢰관계를 쌓았다는 후문이다.
증권사들이 이번 무신사 IPO에 진지하게 임하는 이유는 단순히 수수료 때문만은 아니다. 최대 몸값이 10조원에 달하는 만큼 수수료만 수백억원에 이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실력을 증명할 무대'라는 상징성이 크다.
무신사는 제안서 분량을 50페이지 이내로 제한하고, '미래 성장성' 등을 입증하는 에쿼티 스토리와 리스크 대응 전략을 구체적으로 담으라고 요구했다. 각 하우스의 위기 대응 능력과 경쟁력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평가' 논란이 계속되는 밸류에이션도 승부처다. 당초 10조원이 거론됐으나 최근 시장에서는 7조원 수준이 유력하다. 2023년 시리즈C 투자 당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이 매긴 가치는 3조4000억~3조6000억원이었다. 11일 기준 장외시장에서 무신사 주가는 1만9000원, 시가총액은 약 3조8000억원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실적 안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모가를 높게 책정하면 흥행 실패 위험이 크다"며 "무신사가 요구한 현실적이고 정교한 에쿼티 스토리가 이번 경쟁전의 최대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