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국회, 국민연금에 집중포화 예고…PEF업계만 속탄다
입력 2025.09.19 07:00
    국민연금 출자 과정 들여다보는 금감원
    국정감사 앞두고 국민연금 소환하는 국회
    매년 3~4월 공고, 7월 선정마친 국민연금
    올해는 추석 연휴 전 위탁사 선정 공고 '미지수'
    이사장, CIO 임기만료 앞둔 분위기도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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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의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출자사업이 지연되는 모습이다. 국민연금은 매년 한 두차례씩 대규모 출자 사업을 단행했는데 올해는 뚜렷한 계획을 가늠하기 어렵단 평가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앵커투자자이자 최대 규모 기관투자가의 출자 사업이 기약없이 지연되면서 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는 운용사들의 초조한 모습이 감지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국민연금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시 출자 사업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10월 전에는 공고가 나와야 연내 가까스로 위탁운용사 선정을 마치고 올해 출자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안서를 접수받아 서류심사를 진행하고, PT를 거쳐 후보군을 추린 후 위탁사를 최종 선정하기까진 최소 2~3개월이 소요된다.

      국민연금은 통상적으로 3~4월 위탁운용사 모집공고를 내고 6~7월경에 1차 선정 절차를 마무리 했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7월에 선정 작업을 마쳤다. 국민연금 위탁운용사들 대부분은 사실상 국민연금이 앵커출자자이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다른 기관투자자들에 매칭용 자금을 받아 펀드를 결성해왔다.

      올해 초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국정상황에 기관투자가들의 출자 사업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이고, 새정부의 국정 기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출자에 나서지 않겠단 전략으로 풀이됐다. 하반기에 들어선 이후부터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운용사 선정에 나섰지만 국민연금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사실 국민연금의 출자가 지연된 데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택하고, 해당 사태가 국민연금에 불똥이 튄 점이 주효했다. 하반기 들어 홈플러스와 관련한 논란이 잦아들 것이란 사모펀드 업계의 기대감과는 달리, 현재는 그 여파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분위기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고 MBK파트너스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가 재개되면서 홈플러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초 금융당국의 조사는 홈플러스가 회생절차에 돌입하기 전 MBK파트너스가 이를 인지했는지, 또 이를 알고도 기업어음(CP)과 자산유동화증권(ABCP) 발행을 추진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투자자들의 펀드 출자 과정까지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최근 국민연금 위탁운용사인 스톤브릿지캐피탈에 대한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새롭게 취임한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MBK파트너스를 철저히 조사하고 중대한 위법 행위 발견 시 상응 조치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겠다"며 밝히며 금융당국의 총력 지원을 예고했다.

      국회도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에서 'MBK 홈플러스 사태 해결 태스크포스(TF)' 설치안을 의결했다. 해당 TF가  MBK파트너스만을 대상으로 삼을지, 사태 해결에 초점을 맞출진 미지수이지만 국민연금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단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움직임에 국민연금 실무진들도 바빠졌다. 이미 올해 초 홈플러스 사태가 불거진 이후부터 국민연금 실무진들은 국회에 불려가거나 각종 대외적 질의에 대응하느라 사실상 업무가 마비된 상태로 전해진다. 

      당장 다음달부턴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 피감기관인 국민연금 실무진 대부분은  굉장히 분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국감에선 홈플러스는 물론 11번가 사태까지 과거 투자건에 대한 출자 과정부터 잠재적 손실 등과 관련해 국민연금을 향한 각종 질의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올해 국정감사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 개최 전까지 속도감 있게 진행해 마무리하겠단 계획인데, 이에 앞서 개별 피감기관에 대한 강도높은 자료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민연금 고위층의 인선이 확정되지 않았단 점도 출자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중 하나로 거론된다. 전 정부에서 선임된 김태현 이사장의 임기는 이달 말, 서원주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임기는 올해 말 끝난다. 수장 교체가 기정사실화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투자 부문 전반적으로 집행 움직임이 상당히 신중해졌단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7월 출자 사업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추후 홈플러스 사례와 같은 유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을 정비했다.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에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투자'를 포함시켰다. 또한 기업가치 제고, 지속가능한 성장전략, 건전한 자본구조 등 운용수익의 질 등을 포함하며 단순히 수익률만이 아닌 사회적 책임 및 갈등 관리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살피겠단 의지를 나타냈다.

      새로운 평가 기준에선 운용조직 및 인력에 대한 배점이 낮아졌고, 운용규모(AUM)를 평가하는 세부기준이 사라졌다. 대형 운용사에 비교적 유리한 조항들이 줄어든 대신 밸류업을 주목적으로 하는 중소 운용사들은 정성평가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자 우리나라 기관투자가 사이에선 '대형사'와 '검증된 운용사'에 자금을 몰아주는 쏠림 현상이 나타났었다. 기관투자가들의 움직임에 더해 해외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한 PE운용사들이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비교적 업력이 짧은 운용사들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현상이 심화했다. 

      그러나 올해 MBK사태를 계기로 국민연금의 출자 기준이 변경했고, 대형 PEF 투자보다 벤처캐피탈(VC) 육성에 방점을 찍은 이재명 정부의 기조가 명확해진만큼 펀드 출자시장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