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한화, SK 등 대규모 채용 발표
인력 재배치하던 LG, 포스코도 1만명 이상 고용
500대 기업 절반 이상 “하반기 채용 계획 없다”
대기업 채용 낙수 효과 기대하려면, 인센티브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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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 대통령의 말 한마디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청년 고용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 밝히자 주요 기업들은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신규 채용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기업들의 채용 발표로 지난 수년 간 경력자 채용 위주였던 고용 시장의 흐름이 신입 채용 기조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수출 환경, 특히 기업을 향한 정책 리스크가 여느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기업들의 청사진이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을진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권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한 기업들의 '미봉책' 또는 '선언적' 계획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실제 기업들에 주어지는 '인센티브'를 비롯한 제도적 유인책이 먼저 마련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한 그룹 가운데선 삼성이 단연 규모가 크다. 삼성은 18일 향후 5년간 6만명(연 평균 1만2000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을 발표했다. 주력인 반도체, 그리고 앞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기대할 수 있는 바이오와 인공지능(AI) 분야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고용 시장에서 가장 주목 받는 곳은 역시 SK그룹이다. 역대급 실적을 써내려가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인당 1억원가량의 성과급 지급 가능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미 SK그룹 대통령의 발언에 앞서 올해 8000명의 신규 채용을 진행할 계획을 발표했다. 상반기 4000명을 채용한 SK는 하반기에도 같은 규모를 유지하겠단 전략이다.
한화그룹은 하반기 신규 채용 규모를 확대했다. 상반기 대비 1400명을 늘린 3500명 채용 한다. 포스코그룹은 올해 3000명을 포함해 향후 5년간 총 1만5000명을, LG그룹은 3년간 1만명, HD현대는 5년간 1만명을 충원한다는 계획이다. 수년 전부터 그룹 정기 공채 대신 수시로 인력을 충원해온 현대차그룹도 올해 총 7200명을 신규로 뽑는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발표했다.
기업들의 신규 채용 발표는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일부 기업들은 매년 또는 2~3년 단위로 향후 경영·투자 계획과 동시에 채용 계획을 공개한다. 물론 경영 성과에 따라 세부 계획이 틀어지거나, 유연하게 수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주요 기업들이 급하게 풀어 놓은 채용 보따리 역시 세밀한 중장기 전략에 기반했다기보단, 정부의 기조에 확실히 발 맞추겠단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단 평가도 있다.
우리나라 고용 시장은 상당히 얼어붙어 있는게 사실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 업체에 의뢰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출액 500대 기업 가운데 약 62.8%는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38%), 채용하지 않을 계획(24.8%)으로 나타났다. 내수침체의 장기화, 글로벌 통상질서 변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급격하게 커진 영향이 크다.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은 얼어붙은 채용시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극소수의 산업군을 제외하고 한 때 우리나라 경제의 주축이었던 산업 전반에 걸쳐 희망퇴직의 바람이 불었다.
LG전자는 전 사업부를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중이다. 만 50세 이상 부장급 이하 직원 및 저성과자가 그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과점체제를 이루고 있는 통신3사(LG유플러스, KT, SK텔레콤)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불황에 갇힌 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현대제철은 올해 초 임원들의 급여를 일부 삭감하며 희망퇴직도 실시했고, 포스코 역시 지난해 일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비교적 신사업군에 속하는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SK스퀘어의 자회사 SK플래닛와 원스토어, 11번가 역시 희망퇴직을 실시한 바 있다. LG화학을 비롯한 석화업계 SSG닷컴과 롯데온 등 유통업계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한 편에선 대규모 신규 채용을, 일각에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는 인력들을 신규 인력들로 재배치하거나, 일부 산업군에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존 인력들을 재배치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와 조선, 방산 기업 등 소수의 기업들을 제외하곤 뚜렷한 성장세를 가늠하긴 어려운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내놓은 주요 기업들의 대규모 채용 발표가 현실화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기업에 부탁해 청년 신입 채용을 해 볼 생각"이라며 "선의로만은 안 되고 지원이나 혜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까진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진 않았느나 해당 발언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가 크다. 실제로 한경협은 기업들의 대졸 신규채용을 위해선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들의 투자 고용 확대 유도 ▲고용증가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즉 기업들의 의미만으론 채용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건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재계에서 가장 우려했던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은 당장 내년 시행된다. 1~2차 상법개정안에 더해 3차 상법 개정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심지어 지난 16일 발표된 123대 국정과제엔 대기업들을 향한 지원책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채용 시장에 낙수효과가 발생할지, 신입 채용을 통한 기업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단 전략이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을지. 긍정적인 전망만을 내놓긴 어렵단 지적도 무시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