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PRS에서 몽니 부리는 기업들…대기 타자 조달 사다리는 흔들
입력 2025.09.23 07:00
    합당한 수수료 지불 않으면서 셀다운 등 처분까지 간섭
    외면하자니 보복 두렵고…받아주자니 관행 될까 부담多
    돈 급한 기업 피난처 격인데…부작용 관심 없는 태도 평
    사고 나면 피해는 업계 공통…당국 눈치 보는 건 금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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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주가수익스와프(PRS) 시장을 찾는 기업들이 하나 둘 무리한 요구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금융기관들이 피로감을 토로하고 있다.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19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현재 KB증권·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대신증권 총 5개 증권사와 PRS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기초자산은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이다. LG화학은 주요 대형사들에 5000억 이상씩을 제안하라면서 재매각(셀다운)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된다.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자체 북(book·운용한도)으로 소화해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형 증권사라 해도 한 기업에 이만한 금액을 묶어두기란 쉽지 않다. 수익성이 매력적이라면 공격적으로 나설 곳이 있겠으나, LG화학은 민간평가사 평균금리에 150bp(1bp=0.01%) 정도를 보탠 수수료율을 희망하고 있다. 회사 신용등급을 감안하면 4% 중후반 수준으로 파악된다. 최근 인수금융 금리가 5% 안팎인 걸 감안하면 돈 되는 거래로 보기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벌써 거래에서 손을 뗀 증권사도 나왔다. 남아 있는 주선기관들도 투자심의위원을 설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회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LG엔솔 주식을 유동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LG그룹 내 잠재 영업기회를 감안하더라도 증권사가 감수할 위험에 비해 조건이 너무 박하기 때문이다. 

      앞서 에코프로도 유사한 요청을 해왔다 보니 증권가에선 피로감이 전해진다. 외면하자니 LG그룹과의 관계가 걱정이고, 받아주자니 이런 요구가 계속 늘어날까 부담되기 때문이다. 전까진 수수료율을 낮춰달라는 곳은 많았어도 유동화 문제까지 간섭하려 드는 경우는 없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기업 재무실에선 싸게 조달하는 게 성과인데, 누구는 해주고 우리는 안 되느냐 하는 곳이 안 나올까"라며 "회사채 캡티브 영업이 관행으로 굳어지고 금융감독원 검사까지 받게 된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주선기관에 불리한 조건을 못 박아두는 태도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이 다른 기업 사정에 너무 무신경하다는 지적도 오르내린다. 

      현재 PRS는 ▲돈은 필요한데 부채로 조달할 형편이 안 되고 ▲유상증자를 하기엔 모회사 여력이 부족하거나 주주 눈치가 보이는 기업들이 기대는 선택지로 통한다. 신용등급 하락이 코앞인데 달리 매각할 자산도 없고 영구채나 메자닌 카드를 이미 소진한 곳들이 찾는 경우가 많다. 유동성 급한 기업들의 피난처 격인 셈이다.

      증권사가 다른 거래에 발이 묶이면 이런 기업의 조달을 지원할 자원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일부 증권사들은 회사를 설득해 수개월 뒤라도 셀다운에 나서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우에도 연말까지 조 단위 영업한도가 묶일 수밖에 없다. 

      관계를 앞세워 시장가격을 왜곡시키는 행위의 일종이다 보니 규제당국 눈총도 부담이다. 계약상 PRS는 기초자산인 주식과 함께 배당, 의결권, 처분 권한까지 모두 넘기는 형태라 진성매각에 가깝게 회계 처리할 수 있다. 담보대출과 유사하지만 부채로 잡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달 주체인 기업이 주선 기관의 셀다운을 막고, 가격책정까지 간섭할 수 있다면 해당 논리는 깨진다. 지속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탓이다. 실제로 PRS를 체결하면서 사실상 콜옵션을 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업의 사례까지도 전해진다. 계약 상대방에게 위험에 준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수단까지 막아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격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채 시장은 발행사가 '비싸게 받아줄 물량을 200억씩 채워놓으라' 주문하고, 못 하면 다음 주관사단에서 빼버리고 하다가 시장가격이 왜곡됐다. PRS도 이런 식이면 똑같다. 솔직히 갑질이다"라며 "사고 나면 수단 자체가 막힐 수도 있고, 당국에 시달리는 건 지원에 나선 금융사들이 될 텐데 그런 데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