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엘리슨 자금력에 트럼프 규제완화 맞물려
시총 700조 넷플릭스 '압도적 1위' 굳히기에
경쟁사들 "뭉쳐야 산다" 절실…올해가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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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미디어 업계에서 또 한 번의 대형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의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이 이끄는 영화 제작사 스카이댄스 미디어(이하 스카이댄스)가 파라마운트 인수를 마무리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전체를 삼키려 하고 있다.
2023년 말 워너브라더스와 파라마운트 간 합병설이 나왔을 때는 초기 협상 수준이었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인 인수 제안 및 준비 단계까지 진전됐다. 1년 8개월 사이 스트리밍 업계 판도가 점차 달라지는 모습이다.
아직은 공고한 넷플릭스의 독주
무엇보다 달라진 건 넷플릭스의 압도적 지위다. 2023년만 해도 '스트리밍 전쟁' 표현을 쓸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제는 업계 전문가들이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공식 선언하는 상황이다.
미디어·통신 전문 리서치업체(MoffettNathanson)는 "넷플릭스의 총 기업가치가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폭스, 파라마운트를 모두 합친 것보다 크다"며 넷플릭스가 극복 불가능한 선두주자(insurmountable lead)라고 인정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지난해 4분기에만 1900만명의 신규 구독자를 확보해 총 3억200만명에 달하는 글로벌 회원을 보유하게 됐고, 시가총액도 5100억달러 (한화 약 700조)를 넘겼다.
경쟁사들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콘텐츠 데이터 분석업체(Parrot Analytics)에 따르면 피콕, 파라마운트+, 맥스(구 HBO맥스)는 각자로는 스트리밍이 요구하는 임계 규모에 도달할 수 없다는 평가다.
트럼프가 바꾼 게임의 룰, 래리 엘리슨 자금력이 만드는 차이
최근 큰 변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이다. 2023년 말 바이든 정부 하에서는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DOJ)가 독점 여부를 예의주시하며 M&A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고 있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의 데이비드 자슬라브 CEO는 트럼프 재선 직후 "새 행정부가 업계에 필요한 통합의 속도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 업계에 필요한 진정한 긍정적이고 가속화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 합병 과정에서 트럼프는 CBS를 상대로 한 소송을 1600만달러에 합의하며 승인에 청신호를 보냈다. 민주당의 "뇌물 수수" 비판에도 불구하고 FCC는 7월 합병을 승인했다.
엘리슨의 최대 강점은 오라클 창업자인 아버지 래리 엘리슨의 막대한 재력이다. 순자산 3700억달러로 세계 2위 부호에 오른 래리 엘리슨은 스카이댄스의 파라마운트 인수에만 6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카이댄스는 이번 워너브라더스 인수에서도 차입을 최소화한 현금 매수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장가치 400억달러 수준인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를 인수하는 데는 엘리슨 패밀리 보유 현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2023년 말과 달리 이번에는 부채 문제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당시 워너브라더스의 부채가 451억달러, 파라마운트가 140억달러에 달해 합병의 걸림돌로 지목됐지만 엘리슨 패밀리의 현금 인수 방식이라면 이런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넷플릭스 대항마 탄생하나…스포츠-방송-IP 삼각편대 형성
엘리슨의 M&A 전략은 업계 전반의 불안정 기간 동안 미디어 자산을 통합해 스트리밍 중심의 대기업을 구축하는 것이다. 거래가 최종 성사된다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방대한 콘텐츠 제국을 구축하게 된다. DC 슈퍼히어로ㆍ소닉ㆍ해리포터ㆍ왕좌의 게임 등 글로벌 IP부터 NHLㆍMLBㆍNASCAR 등 스포츠 중계권, 그리고 CBSㆍCNNㆍHBOㆍMTV 등 방송 네트워크까지 모두 한 지붕 아래 들어오는 셈이다.
이를 두고 마이크 프룰스 글로벌 IT 컨설팅업체 포레스터(Forrester) 부사장은 "HBO맥스와 파라마운트+를 결합한 새로운 스트리밍 서비스는 넷플릭스와 통합된 디즈니플러스 및 훌루 라이브러리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순 계산으로 파라마운트+(7770만 구독자)와 HBO맥스(1억2570만 구독자)가 합쳐지면 약 2억명의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 중복 가입자를 제외하면 실제 규모는 줄어들겠지만, 넷플릭스에 근접한 수준이다. 여기에 UFC와 7년 77억달러 계약을 체결한 스포츠 콘텐츠 강화 전략까지 더해지면, 진정한 '반(反)넷플릭스 연대'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물론 플랫폼만 합친다고 해서 넷플릭스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올해에만 콘텐츠 제작과 확보에 186억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3억명 이상의 구독자 기반에 분산시키면 미국 내 미디어 중에선 5위 정도의 단위당 지출이 된다. 여전히 넷플릭스가 효율성 면에서 앞서 있다는 뜻이다.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엘리슨家…중소 OTT 매각 압력 심화
2023년 말 "워너브라더스와 파라마운트가 합병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막연한 추측에 가까웠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 훨씬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발전했다.
데이비드 엘리슨의 대담한 행보는 일방적이던 스트리밍 전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오라클 창업자의 아들이라는 배경, 막대한 자금력, 정치적 우호 환경이 결합되면서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거래가 성사될 경우 스트리밍 업계 밸류에이션 전반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적자에 시달리는 중소 OTT들의 매각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글로벌 재편은 한국 콘텐츠 업계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카이댄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은 더 거대해진 파트너를 상대하게 되면서 협상력 확보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