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나서는 LH…'자금 조달 책임 떠넘길까' 금융지주들 조마조마
입력 2025.09.24 07:00
    부채만 170조 육박…직접 시행 나서
    LH 공사채, 실제 발행 규모 확대가 관건
    금융지주, 펀드·대출 형태 지원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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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시행 주체로 포함시키면서, 금융시장과 금융지주들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부채가 17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추가 시행사업을 직접 맡게 되면 대규모 자금 수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LH가 직접 시행에 나서는 것이다. 전환되는 물량은 약 5만3000가구로, 2·3기 신도시 등 경기·인천 공공택지가 주요 대상이다. 서울 도심복합사업, 노후 임대단지 재건축 등도 포함됐다. 기존 계획된 물량까지 합치면 경기·인천권에서만 수십만 가구의 공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그동안 LH는 토지를 확보해 민간 시행사에 매각하고 매각 차익을 얻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LH가 직접 시행에 나서면 단순한 토지 매각형 모델에서 벗어나 분양까지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된다. 이는 건설·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금융권에도 큰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LH의 부채는 올해 말 기준 170조1817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사업 추진을 위해 가장 먼저 예상되는 수단은 공사채 발행이다. 올해 발행된 LH 토지주택채권은 3조4102억원에 불과하지만, 이사회에서 승인한 연간 계획은 15조원에 달한다. 실제 발행 규모가 앞으로 얼마나 확대될지가 관건이다.

      KB증권은 “LH가 시행을 직접 맡을 경우 채권 발행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6년 3월에는 채권 발행 한도 승인도 예정돼 있어, 정책 드라이브가 걸릴 경우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선 과거 전례를 떠올린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6개월 만에 19조원의 LH 채권이 발행된 사례가 있다”며 “국채 발행 물량도 많은 상황에서 LH 채권이 대거 늘어나면 금리 상승 압력은 불가피하다. 한전채 사태를 겪었지만, 물량 앞에선 시장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LH 역시 재무 악화를 우려해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 중이다. 필요할 경우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에 나서는 방안도 거론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향후 5년간 신규 사업 연속 착수와 물량 증가로 자산·부채가 동시에 불어날 전망인데, 건설경기 침체 속 당기순이익은 줄어드는 흐름을 LH도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정부의 ‘청구서’를 미리 걱정하는 모습이다. 대규모 채권 발행이 현실화되면 이를 받아줄 주요 수요처가 결국 연기금·공제회와 시중 금융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구조다. 토지 매각 때는 곧바로 수익이 발생했지만, 시행사업은 분양대금과 잔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수년간 자금이 투입된다. 금융지주가 펀드나 대출 형태로 지원을 요청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LH가 시행으로 전환하면 자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현실적으로 자체 조달만으로는 감당이 어렵다”며 “결국 금융지주가 저리 대출을 제공하거나 펀드를 조성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급 속도전’을 위한 LH 시행 전환은 정책적 효과는 기대되지만, 금융시장에는 자금조달 압박·금리상승 우려·금융권 부담 전가라는 3중의 리스크를 안길 수 있다. 과거 전례와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금융지주들의 긴장감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공공성이 강조된 사업이다 보니 수익성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권은 사실상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