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회발(發) 문의 요청 빗발
중소 운용사에도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여부 보고하라"
시간·인력·시스템 등 인프라 전무한데
지원책 등 인센티브 없이 책임 투자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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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사태의 후폭풍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몰론이고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향한 금융당국의 감시망은 전방위적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최근 PEF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한 사태들은 사실 경영권을 확보해 기업가치를 높여 수익을 창출하는 기관전용사모펀드에서 불거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일반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중소형 운용사에도 그 여파가 점점 미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중소형 운용사를 대상으로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 '책임투자', 즉 스튜어드십코드 기준 마련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잦아졌다고 한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회의원실을 통해 개별 운용사들에 책임투자와 관련한 현황 문의가 늘었을 뿐 아니라 지침 또는 공문으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촉구하고 향후 계획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늘었다고 전해진다.
일부 의원실에선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을 점검할 계획이며, 추후 실행이 미미할 경우 주요 기관들로부터 위탁사 지위를 받지 못하게 하는 등의 패널티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수탁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세부원칙 또는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을 시 피투자기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거나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주주의 권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주주보호 정책들이 하나둘 마련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기관투자가들의 책임투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왔던 건 사실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와 금융지주계열 자산운용사 등 대형사들은 상당수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해 이행하고 있다. 일부 대형 운용사는 책임투자보고서 등을 발간하며 스튜어드십코드의 이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수탁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독립계 운용사 또는 중소·중견 운용사들의 사정은 좀 다르다. 펀드매니저 한 명이 적게는 수십개, 많게는 수백개의 피투자기업을 관리하면서 투자 집행 및 운용, 보고서 작성, 주기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개별 운용사별로 세부 사정은 다르지만, 대형운용사 몇몇을 제외하고는 책임투자를 담당하는 인력과 시스템,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곳이 많다.
그렇다보니 개별 투자기업에 대해 일일이 모니터링을 하고, 매순간 이슈별로 대응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매년 주주총회 시즌이 되면 수백곳의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고, 주기적으로 대형 출자기관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형 운용사들이 개별 투자 기업에 대한 서신 발송, 경영진 면담, 임원선임 또는 해임청구, 정관 변경 요구 등 적극적인 주주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단 평가다. 이를 전담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를 잘 갖추기 위해선 시간과 비용 투입이 불가피한데, 산발적인 지침과 패널티에 대한 언급만 내려올 뿐 인센티브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런 중소형 운용사들의 현실을 어느 곳보다 잘 알고 있는 국민연금은 사실 위탁운용사들에 이 같은 지침을 내리는 등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스튜어드십코드를 이행을 촉구하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중소형 운용사들 사이에선 상당히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론 수탁자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스튜어드십코드의 필요성에 대해선 운용사들 상당수가 공감하고는 있지만, 기업에 투자하는 모든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주주여야하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는 곳들도 많다. 이는 모든 투자자들이 국민연금 또는 행동주의펀드와 같은 포지션을 갖춰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이 같은 요구가 늘어난 건 MBK 사태의 여파뿐 아니라 대통령의 코스피5000 공약과도 맞물려 해석할 수 있다. 기업에 대한 견제와 감시, 적극적인 주주권행사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단 전략은 코스피5000위원회를 설치하는 등의 여당의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기업의 가치 증대, 주주권 보호의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은 분명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모든 운용사들은 '수익률 극대화'란 대전제를 설정하고 각자 다른 포지션과 전략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망 속에서 내부 규정과 기준의 테두리를 마련해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몇몇의 금융 사고와 아직은 막연한 코스피5000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천편일률적으로 책임 투자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