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부실·정책리스크’에 소극적
지주 계열 증권·캐피탈사에 반사이익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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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위험가중자산(RWA, Risk-Weighted Assets) 규제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지는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가계 중심의 자금 흐름을 기업·투자 쪽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은행ㆍ지주의 내부 모델상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다는 점과 '150조원' 규모 정책펀드에 대한 출자가 우선 순위라는 점 등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위해 주담대 위험가중치를 현행 15%에서 20%로 상향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반면 기업 주식 보유 위험가중치는 400%에서 250%로 낮추고, 정책 목적 펀드 투자에 대해서는 ‘100% 특례’ 기준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은행의 기업대출·펀드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RWA 개편은 본질적으로 주담대 공급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다. 위험가중치가 높아질수록 동일 대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은행은 더 많은 자기자본을 쌓아야 하므로 주담대 확대가 힘들어진다. 대신 완화된 규제가 기업대출·출자 영역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설계된 셈이다.
은행권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미 6억원 규제, 총량 규제 등으로 주담대는 감소세에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담대는 이미 줄이고 있어 추가 규제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RWA 상향이 체감적 변화를 일으키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대출 역시 쉽지 않다. 정부 요청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이 늘고 있지만, 은행 내부적으로는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가 크다. 무작정 대출 확대는 부담이 된다. 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식 보유 위험가중치가 낮아졌지만, 은행들은 이미 내부 목표치를 채운 상황이라 추가 출자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은행보다 은행계 증권사와 캐피탈사가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받지 못한 증권사는 자본 규제 완화로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미 발행어음을 보유한 KB증권, 인가 신청 중인 신한·하나투자증권 등은 상대적으로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계 중소형사 중심으로 다소간의 수혜가 예상된다”며 “대형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이제 ‘RWA 핑계’를 대기 어려워졌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150조원 규모의 정책펀드 조성을 추진하는 점도 변수다. 금융지주가 자체적으로 공격적 출자·대출에 나서더라도 결국 정책펀드에 우선적으로 자금이 배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조단위 자금이 정책펀드로 흘러갈 상황이라 RWA 규제 완화가 실제 은행의 투자 여력을 얼마나 늘릴지는 미지수”라며 “정부 요구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RWA 개편은 ‘가계→기업·투자’ 자금 전환을 의도했지만, 은행들의 행보가 적극적으로 바뀔지는 불투명하다. 부실 리스크, 내부 출자한도, 정책펀드 변수 등 현실적 제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가 당장 공격적으로 움직이긴 어렵고, 증권·캐피탈사 등 비은행 계열사가 상대적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규제 개편의 실질적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 정부의 여러 정책 펀드에 대한 은행 및 지주의 출자 부담은 최대 수천억원대 수준이었지만, 이번 정부는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 자금 운용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한 상황"이라며 "RWA 부담이 줄어드는 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내부 리스크 평가 모델을 모두 무시하면서까지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