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 초읽기…롯데지주, 27% 물량 처리 해법 주목
입력 2025.09.26 07:00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 초읽기…롯데지주, 27% 물량 처리 해법 주목
    재무여건 부담 속 EB 발행은 제약…계열사 매각이 현실적 대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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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이 속도를 내면서 자사주 비율이 27%에 달하는 롯데지주가 해법 마련에 나설지 주목된다. 재무여건이 빠듯한 상황에서 자사주를 단순 소각하기는 쉽지 않고, 신동빈 회장의 그룹 지배구조 안정석 측면에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이에 따라 계열사를 통한 주식 매입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안 통과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내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는 당내 의견 수렴 작업에 착수하며 회기 내 단일안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현재 발의된 김남근·민병덕 민주당 의원안,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안, 김현정 민주당 의원안 등을 살펴보면 기존 자사주의 소각 시한을 6개월에서 5년으로 각각 다르게 설정하는 등 세부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추가 조율이 필요하다. 정치권의 논의가 가속화될 경우 관련 기업들의 대응책 마련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장의 관심이 롯데지주에 집중되고 있다. 롯데지주의 자사주 보유 비율이 27.5%로 50대 그룹사 중 태영그룹을 제외하고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자사주 소각 시 상당한 물량의 주식이 감소하면서 주가 상승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롯데지주는 현재 재무 여건상 자사주 즉시 소각보다는 다른 방안을 우선 검토할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케미칼 등 부진한 계열사가 있는 데다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신사업 분야에도 지속적인 자금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현금 확보가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지주는 올해 과도한 재무부담으로 신용등급이 AA-에서 A+로 하향조정되기도 했다. 이에 자사주 소각은 재무적으로 '최후의 선택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롯데지주가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EB는 자사주를 이용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꼽힌다. 

      태광산업의 EB 발행이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불러일으킨 후 대기업들의 EB 발행 결정이 더욱 신중해졌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EB 발행이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를 가져와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같은 제약 속에서 그룹 계열사가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11.1%), 롯데알미늄(5.1%) 등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지주 지분 45%를 확보하고 있으나, 개인 지분은 13% 수준에 불과하다. 계열사가 자사주를 매입하면 지배력 보완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롯데지주는 지난 6월 롯데물산에 자사주 5%를 넘기고 약 1500억원을 확보했다. 롯데지주는 올 초 공시를 통해 자사주 15%를 매각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롯데지주는 향후 10% 내외의 자사주 추가 처분을 계획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규제 기준인 '10% 보유 상한'을 맞추려면 추가 매각은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자금력이 있으면서 지배구조 상단에 있는 계열사들이 매입 주체로 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예컨대 롯데지주의 자사주를 매입한 롯데물산의 경우 롯데월드타워 임대수익 등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어 기업 내 소방수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롯데건설 지원 펀드에 2000억원을 후순위로 투입하기도 했다. 

      다만 계열사 간 자사주 거래는 주주 충실의무 관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의 개인 최대주주이면서 동시에 롯데물산의 최대주주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로, 거래 양쪽을 모두 관장하는 위치에 있다. 이해상충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정 계열사에 자사주를 몰아주는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지배력 보완과 재무개선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특성상, 일부 계열사가 자사주를 나눠 매입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논의되는 것으로 안다"며 "EB 발행 등은 주주 반발로 현실화되기 어렵고, 필요하다면 PRS 등 다른 유동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