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동원한 주문에 시장 왜곡 논란
징계보단 모범규준 마련 등 제도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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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증권사들의 회사채 '캡티브(captive)' 영업 관행에 대해 진행한 검사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발행시장 건전성을 흔드는 대표적 관행으로 지적돼왔지만,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강도 높은 제재보다는 가이드라인 제시와 모범규준 개정 등 제도 정비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증권사들을 상대로 캡티브 검사와 관련한 의견 수렴을 마쳤다. 상반기 진행한 현장검사에 대한 후속 절차의 성격이다. 올 상반기 금감원은 회사채 시장 점유율 상위 증권사 6곳(삼성·미래에셋·신한·한국투자·NH·KB)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으며, 이르면 내달 최종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이번 검사에 착수한 이유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회사채 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일부 증권사들이 발행 주관 실적 확보를 위해 계열사 자금이나 고유계정을 동원해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행태가 반복돼왔다. 표면적으로는 필요에 의한 주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장 가격을 왜곡시키고 다른 실수요자들의 참여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당초 금감원은 강도 높은 검사를 예고한 바 있다. 실제로 이복현 전 금감원장은 "채권형 랩·신탁 검사에 이은 채권시장 혼탁 관행 정상화 시즌2"라고 밝히며, "올 상반기 검사 역량을 집중해 채권시장 내 불공정한 부분을 개선하겠다"라고 강조할 정도로 강도 높은 검사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당초 업계에서는 이번 검사가 증권사에 대한 실질적인 징계로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검사 자체가 연기금과 공제회 등 실수요자들의 민원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던 만큼, 일각에선 과징금 부과 가능성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당국 내부에서도 지나친 제재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발행시장 구조상 증권사의 캡티브 물량 비중이 상당한 만큼 이를 일률적으로 문제 삼을 경우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불건전 영업 행위를 입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거란 평가다.
금감원은 현재 이런 현실적 맥락을 감안해 제재보다는 지침과 권고 위주의 계도 조치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결론은 모범규준 개정과 공시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발행부서와 운용부서 간 손익 공유나 데이터 교류를 금지하는 내부통제 지침을 명문화하고, 계열사 주문 비중과 참여 형태를 시장에 더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증권사들도 징계보다는 가이드라인 수준의 규제라면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나친 제재가 발행사와 주관사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제도적 가이드라인으로 일정한 선만 정리해 준다면 오히려 예측 가능성을 높여 실무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캡티브 주문을 완전히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최소한 계열사 주문 비중을 공시하고, 발행사와의 사전 합의 절차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정도라면 업계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