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은행·핀테크 등, 컨소시엄 꾸리며 인프라 마련
"법제화 또 미뤄지면 STO 신뢰 자체 흔들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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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정기국회가 개막한 가운데, 토큰증권 발행(STO)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증권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2023년부터 계류돼 온 토큰증권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지, 또 한 번 표류할지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토큰증권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쓰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안정성과 편의성을 강화한 디지털 증권이다. 부동산, 원자재, 가축, 저작권 등 투자가 까다로운 자산을 쪼개 손쉽게 지분을 소유하는 '조각투자'를 제도권에서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의 관심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주식·채권 등 기존 증권의 토큰증권화로까지 확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무위원회에는 토큰증권 제도화를 위한 법안 5건이 상정돼있다. 이 중 핵심은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전자증권 발행을 허용하는 전자증권법(전자등록법) 개정안과 투자계약증권의 정의와 유통 구조를 정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다.
증권업계는 이번 정기국회를 분수령으로 본다. 스테이블코인 법안까지 통과되면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가 제도권에 편입돼, 향후 토큰증권 거래의 정산·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다만 정무위원회의 법안소위 일정은 여전히 미정이고, 국정감사 일정이 본격화하면 STO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아 업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당초 업계 분위기는 낙관적이었다. 토큰증권이 현 정부 123대 국정과제와 12대 중점 전략과제에 동시에 포함됐고,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조속한 입법 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기대감이 높아졌다. 특히 여야 모두 토큰증권을 비쟁점 법안으로 분류하고 있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앞서 토큰증권의 법제화 논의는 번번이 좌초돼 왔다. 21대 국회에서도 토큰증권 관련 법안이 여야 합의에 도달했지만 다른 현안에 밀려 논의조차 못 한 채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계엄·탄핵 사태 등 정치적 변수가 겹치며 법안 처리가 지연됐다.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무산되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강하다.
토큰증권은 그간 핀테크 업계의 조각투자 상품으로만 시도돼왔다는 평가가 많았다.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에 관련 규정이 없어 합법도 불법도 아닌 규제 회색 지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제도권 증권사 진입은 불가능했고, 거래소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도 없어 시장 규모가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물밑에서 토큰증권 법제화를 대비해 사업화 준비를 했다는 설명이다. 대신증권은 일찌감치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카사'를 인수하며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솔라나와 협력해 법제화 직후 바로 사업이 가능할 정도로 시스템을 갖췄고, IBK투자증권은 증권사 최초로 토큰증권 상표권을 출원했다. 토스 역시 퀵토큰페이라는 상표권을 확보하며 결제 인프라 연결을 염두에 뒀다.
대형사들도 자체 생태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토큰증권 발행과 유통을 엄격히 분리하면서, 증권사 단독으로는 자기 발행 증권의 유통이 어려운 구조인 까닭에 여러 증권사들은 컨소시엄을 꾸리거나 IT기업·핀테크사와 제휴해 유통·발행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하나금융·SK텔레콤과 '넥스트파이낸스이니셔티브(NFI)'를 꾸려 자체 STO 메인넷 개발을 마쳤고, 신한투자증권은 SK증권·블록체인글로벌과 함께 '펄스(PULS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농협은행·케이뱅크·펀블 등과 'STO 비전그룹'을, KB증권은 조각투자 플랫폼·IT기업들과 'ST 오너스' 협의체를 결성했다.
은행권도 가세했다. NH농협은행은 스마트팜 기반 토큰증권 발행을 준비 중이고, 우리은행은 삼성증권·SK증권과 공동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신한투자증권과 발행·유통 지원 사업을 전개 중이다. 사실상 금융권 전반이 토큰증권 제도화를 전제로 '판짜기'를 끝내둔 셈이다.
결국 이번 정기국회가 토큰증권 제도화의 분기점이 될지, 아니면 또다시 논의만 이어가며 표류할지가 업계 최대 관심사라는 평이다. 2년 넘게 끌어온 법제화가 이번에도 무산된다면, STO 시장의 신뢰와 참여 의지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STO 시장의 결제 수단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될 가능성도 높아 증권사들의 관심이 큰 상황"이라며 "토큰증권 제도화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해뒀기에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