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조 생산적 금융 청사진, 국민성장펀드 10조 투자 공개
AI·주담대 감축·취약계층 지원 등 '키워드'도 강조
임기 만료 앞두고 존재감 부각 노린 행보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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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만료를 앞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브리핑에 '깜짝 등장'해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등 정부에 대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약 100여명의 기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임 회장은 혼자 브리핑 프레젠테이션을 이끌었다.
임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정부 정책에 전면적인 협조를 천명한 이번 행사를 두고 결국 연임을 위한 존재감 알리기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우리금융은 29일 '우리금융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 CEO 합동 브리핑'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임종룡 회장은 생산적 금융 73조원, 포용금융 8조원의 추진방안과 이를 뒷받침할 자본 안정성, AI기반 경영시스템 대전환, 자산 건전성 관련 사항 등을 직접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금융은 약 30페이지 상당에 달하는 두꺼운 자료와 함께 최근 정부 기조에서 한치의 빈틈이나 어긋남이 없는 '빽빽한'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행사 전날 갑작스럽게 통보된 브리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적으로는 상당기간 관련 자료를 준비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 회장은 무려 45분 동안 연단 앞에 서서 직접 이 같은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생산적 금융'에 대해서도 가장 먼저 8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면서 금융지주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주도권을 쥐려는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났다.
최근 금융사들이 얼마를 투입해야 할 지를 놓고 눈치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국민성장펀드 또한 민간 금융회사로선 처음으로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구체적인 규모를 내놨다. 연도별 세부 추진 방안까지 담아 제시하는 등 '고민의 흔적'을 담았다는 분석이다.
이날 간담회 장소 한 켠에는 정진완 우리은행장을 비롯해 우리투자증권·ABL생명·우리금융저축은행·우리자산운용·우리벤처파트너스·우리PE 자회사 CEO가 나란히 참석해 자리를 채웠다. 임 회장 또한 이번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의 주역으로 은행 뿐만 아니라 전 계열사가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임 회장은 이날 발표가 끝나고 진행한 질의응답 자리에서도 "제가 먼저 답변하니 사회자께서 편치 않으신 것 같은데 우리 계열사 대표님을 자진해서 답변 좀 부탁드리겠다"며 계열사 대표들에게도 적극적인 발언 기회를 제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금융은 이날 생산적 금융으로 국민성장펀드(10조) 외에도 그룹 공통투자펀드 및 증권사 중심의 모험자본 투자, 자산운용사 중심의 생산적금융 펀드 등 총 7조원의 그룹 자체투자, 56조원 규모의 융자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임 회장은 생산적 금융에 잇따르는 자본 건전성, 건전성 악화 우려 차단을 위해 올 연말 12.5%로 제시한 목표치를 달성하는 동시에 정부의 금융 정책 기조에도 '충실히' 따르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우리금융은 이를 위해 주택담보, 임대사업자 대출을 첨단전략산업 대출로 전환하는 등 자산을 리밸런싱하고, 당국이 추진하는 위험가중치(RW) 조정분을 생산적 금융에 우선 반영해 자본 안정성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임 회장의 '선물 보따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7조원 규모의 포용금융, AI기반 경영시스템 대전환 등 정부의 최근 기조와 맞닿은 부문에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생산적 금융의 실현 가능성 우려를 의식한 듯 생산적 금융 전담조직 및 중소기업 특화채널 신설 등 조직개편에도 힘을 실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직접 나서 이같은 '선물보따리'를 푼 데 대해 내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한 행보라고 해석하고 있다.
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위원장을 역임했고, 이전 윤석열 정부 시절 '깜짝 후보'로 등장해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올랐다. 주요 은행금융지주는 민간 기업임에도 불구,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관치(官治)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에는 '4대 금융지주 회장 중 절반은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전 정부 인사라는 색채가 짙은 임 회장이 '생산적 금융 선물 보따리'를 경쟁사 대비 이른 시점에 풀고, 정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지원과 협조의 의사를 직접 표시한 것을 두고 '연임'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게 아니냐는 관전평이 따라붙는 배경이다.
정부 주도로 구성되는 이른바 '정책 펀드'들의 수익성이 시장 수익률보다 높기 어렵다는 점, 포용금융과 기업금융 확대가 수익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은 주주 입장에서 우려되는 지점으로 꼽힌다. 자칫 우리금융이 '정부 정책 부응'과 '주주 충실 의무'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임 회장의 우리금융은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에도 정부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금융회사였다"며 "우리금융에 대한 정부(예금보험공사) 지분은 5% 미만으로 축소됐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호응도는 이전보다 더 강화되는 모양새인데, 이를 최고경영자의 입지와 무관하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