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신탁 등 시니어 사업이 '생산적 금융'?
실물 경제 투자는 미적지근…"정책 지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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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생산적 금융'에 이어 '고령화' 키워드를 꺼내며 금융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생산적 금융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금융권은 우선 연금·신탁 등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모습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23일 금융권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금융권이 생산성이 높은 부문을 선별해 자금을 공급하며 경제 혈맥이 되어야 한다"며 "기존의 역할을 넘어 고령화라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구체적으로 부동산에 묶여있는 자금을 주택연금·신탁상품으로 유동화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노인복지주택 사업을 확대하고, 시행 자금을 리츠 등 자본시장 투자와 연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금융권에선 이를 생산적 금융에 대한 힌트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시니어 시장은 금융권 전반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금융지주들은 저마다 시니어 특화 브랜드를 선보이고 은행을 중심으로 유언대용신탁, 주택연금 등의 특화 상품을 내놓고 있다. 보험업권은 작년 말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도입되면서 최근 생명보험사들이 관련 상품을 출시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서 어떤 방향으로 전략을 짜야 하나 고민이 많던 차"라며 "당국이 연금·신탁에 관심을 보였으니 일단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방향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당국의 지원을 기대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시니어 사업은 그간 공공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해 민간 사업에 대해 큰 지원이 없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제 생산적 금융이라는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당국의 뒷받침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송원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각종 연금에 대한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확대, 액티브 시니어 증가에 따른 실버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금융,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산적 금융에 대한 해석도 점차 변화하는 분위기다. 애초 업계에선 벤처투자 등 모험자본을 확대하라는 시그널로 읽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들어선 국채 등 안전자산 대신 일반기업 등에 대한 직접 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전한다.
이에 따라 연구기관들도 생산적 금융을 위한 제언을 하나 둘 내놓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24일 '은행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방안' 세미나에서 "은행의 부수업무 및 자회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은행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업무만 허용하는 현행 규제 하에선 생산적 방향으로의 장기 투자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는 자산부채관리(ALM)를 위해 장기채 투자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만큼, 장기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원하는 건 실물 경제에 직접 투자하는 것 같은데, 이에 따른 이득이 현재로서는 없다"며 "금리 리스크 등을 줄이기 위해 장기채 투자를 확대하는 흐름이라 이를 상쇄할만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