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무신사 등 플랫폼 기업 수수료 추궁
KT 해킹 여파로 임원·대관 인력 교체설
금융사, 증인 제외됐지만 긴장감은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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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에서 진행될 첫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등 기업 규제 법안이 국회 테이블에 오르면서 증인 소환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의원회관 복도에는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일부 기업은 대관팀을 재편하고 있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대기업은 건설·플랫폼·통신·금융 등을 망라해 50여곳에 달한다.
국토교통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는 중대재해 사고에 집중할 예정이다.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GS건설 등 주요 건설사 대표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될 전망이다. 거제 조선소 내 사망사고가 발생한 한화오션도 출석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안전사고가 반복되면서 국회에서는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2주 전부터 대관팀이 국회에서 거의 24시간 대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플랫폼 공정거래 안건이 핵심이다. 쿠팡, 무신사,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대표를 비롯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증인으로 확정됐다. 여당을 중심으로 온플법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플랫폼 수수료와 갑질 문제가 집중 추궁될 전망이다.
정무위원회에선 다양한 논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KT와 MBK파트너스는 해킹 사태로, SK그룹은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으로, 쿠팡은 온라인 플랫폼 불공정 거래로 각각 소환됐다. 특히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사태에 이어 롯데카드 해킹까지 겹치면서 정치권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현대건설(관저공사 의혹), 호텔신라(APEC 결혼식 논란), 롯데지주(자사주 소각), SPC(산재 사망) 등은 최종 명단 확정을 앞두고 수면 아래 조율이 한창이다.
활발해진 대관 영입시장…높아진 삼성그룹 대관 몸값
증인 소환이 확정되기 이전부터 기업들의 대관 조직 움직임이 활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쿠팡이다. 쿠팡은 올해 노란봉투법과 온플법 이슈로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대관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기존 로펌 출신 중심에서 국회 보좌진 출신으로 10여명을 새로 뽑으며 대관 전략을 조정했다. 올해 삼성그룹에서 영입한 민병기 부사장을 중심으로 여당팀과 야당팀의 소통 체계도 재정비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미국이 온플법에 반대 입장을 낸 배후에 쿠팡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무위 일부 의원실에서 쿠팡 방문을 제한하는 분위기"라며 "공격적 대관 영입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아한형제들도 최근 윤석준 전 제일기획 부사장을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략 총괄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대관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플랫폼 기업들 사이에선 삼성그룹의 정부관계 노하우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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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계는 다른 이유로 대관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KT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김영섭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고, 임원진 교체설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한 과방위 관계자는 "KT 파동으로 임원진 대부분이 교체될 명분이 생겼다"며 "임원진이 바뀌면 대관팀도 재편성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관팀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운영되며, 여당과 야당 6대4 비율로 구성된다. 계약 기간은 통상 2년이다. KT의 경우 올해 말이면 상당수 대관 인력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라, 임원진 교체와 맞물려 대관 조직 전체가 물갈이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엔 비켜갔다"…금융사는 안도 분위기
금융권은 상대적으로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롯데카드가 해킹으로 정무위에 불려갔지만, 주요 시중은행이나 증권사 대표들은 최종 증인 명단에서 대부분 빠졌다. 올해는 건설사와 플랫폼, 통신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금융권은 상대적으로 관심 밖으로 밀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무위와 기재위에서 부동산PF 문제가 일부 거론됐지만 증인 채택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 금융사 대관팀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집사 게이트' 의혹에 연루된 일부 금융사들이 이번 국정감사에 증인 명단에 올랐지만, 여야 간사간 협의에서 모두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의결에서 빠진 것은 다행이지만, 국감 진행 중에도 종합국감을 위해 추가로 증인을 의결할 가능성도 남아 있는 만큼, 계속해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국감이 정책 검증보다 기업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여당에서 야당으로 위치가 바뀐 국민의힘이 정부 견제 장치로 '기업인 소환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선 대관 관계자는 "매년 가을만 되면 여의도에서 무릎을 꿇느라 정신이 없다"며 "증인 채택을 볼모로 의원실 민원과 지역구 지원 요구가 뒤섞인다"고 토로했다.
국감은 10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현재 의원회관 복도에는 검은 양복 차림의 대관 담당자들이 줄을 잇는다. 여당은 노란봉투법과 온플법 등 규제 법안을, 야당은 정부 견제 수단으로 기업 소환을 활용하면서 여야 공세가 여의도에서 맞물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