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불러온 新반도체 슈퍼사이클…돈 쓸어담을 일만 남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입력 2025.10.13 07:00
    HBM만 팔리던 시절 지났다…범용 메모리 수요 폭발적 증가
    AI 수요처 자체가 넓어지는 단계…오픈AI 협력은 입도선매 평
    전례 없는 상황에 D램 사이클만 2028년까지 이어진다 전망도
    빚내서라도 투자하는 구간…삼성전자·SK하이닉스 향할 자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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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가 언제, 어디까지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고대역폭메모리(HBM)뿐 아니라 일반 D램과 낸드까지 메모리 반도체 산업 전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생태계 구축의 최전선에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막대한 현금이 밀려들 것이란 전망이 가득하다. 

      10월 들어 샘 알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찾아 장기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자사가 추진하는 스타게이트프로젝트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적기에 확보하기 위해 입도선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인 협력 방식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나 오픈AI가 양사를 찾아온 장면에 대해서는 일치된 평이 나온다. 큰손들이 공급부족을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각사가 협력을 맺은 직후부터 삼성전자 주가는 연일 급등, 결국 '9만전자'를 달성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11% 이상 상승해 40만원을 돌파했다. 오픈AI뿐 아니라 9월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빅테크들의 투자계획 상향 발표를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반응이 많다. 국내외 증권사, 투자은행(IB)들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내년 투자(CAPEX) 계획을 20~30%씩 올려잡고 있다. 이 돈 대부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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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판이 바뀐 것 같다. 지금 전방 빅테크들이 필요로 하는 AI 인프라 투자 규모가 기존 자본력을 웃돌고 있다. 빚내서 반도체를 사재기해야 할 정도로 수요가 몰리는 상황"이라며 "버블 우려가 커질 수도 있지만, 역대 최장 사이클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AI 수요 지형 자체가 광활해지고 있다는 게 핵심으로 꼽힌다. 

      당초 SK하이닉스가 HBM으로 대박을 기록한 건 엔비디아 가속기(GPU)가 서버 시장을 송두리째 바꾼 덕이 컸다. 원래 서버 산업은 인텔 중앙처리장치(CPU)와 범용 D램, 낸드로 채워지는 구조였으나, AI 산업에서 GPU를 중심으로 서버를 구축하자니 D램 대신 HBM을 써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엔비디아 GPU와 SK하이닉스 HBM 외에 일반 D램, 낸드 수요가 늘어날 시점을 두고 보수적인 추정이 지배적이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일반 D램이나 낸드가 부족하다는 신호가 빗발치는 중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수년 내 엔비디아가 필요로 하는 범용 D램 수요만 해도 애플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오르내린다. 루빈(Rubin)이나 베라(Vera) 등 엔비디아가 곧 출시할 서버용 칩셋 플랫폼에 GPU와 CPU, HBM과 LPDDR 등이 무더기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방 산업에서 AI 워크로드(작업량)가 늘어나는 속도가 그만큼 가파르다는 얘기고, 서버나 모바일 기기에 쓰이던 D램, 낸드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업계에선 이번 D램의 가격 상승 사이클이 길게는 2028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전례가 없다. 아직도 슈퍼사이클(초호황)로 회자되는 지난 2017년 당시에도 1~2년 사이에 공급부족이 해소됐었는데, 그 이상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얘기다. 읽고 쓰는 정보량이 늘어나는 만큼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해야 하니, 자연히 낸드 수요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앞서 제시한 가이드라인보다 공격적으로 CAPEX를 늘릴 것이라고 가정해도 수요가 워낙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이라며 "보수적으로는 사이클에 대응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정도 목소리도 있지만, 이번에 시작되는 메모리 사이클이 역대 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어쨌든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증권가는 지난 한 달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을 수정해왔는데, 컨센서스(잠정치)가 주 단위로 바뀌는 상황이 계속된다. 현재 시장 수요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SK하이닉스의 경우 2026년까지 매출이 2배 가까이 늘면서도 50%대 마진율을 꾸준히 기록할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작년 매출 66조원, 영업이익 23조원 규모였던 회사 실적이 2년 후엔 매출액 115조원, 영업이익 58조원을 기록할 것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대감이 따른다. 순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 수준으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내후년 매출액이 36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HBM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기까지 아직은 보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결국 SK하이닉스와 함께 전방 낙숫물을 쓸어 담게 되는 건 다르지 않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