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바뀐 K뷰티, 질주하는 에이피알…LG생건·아모레는 반등 여지 있을까
입력 2025.10.14 07:00
    에이피알, 호실적에 시총 10조원 육박
    인디브랜드 중심 K뷰티 인기에 생건·아모레 소외돼
    쇄신 이어지고 있지만 무거운 몸집에 업계는 아직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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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8월, 화장품업계의 눈은 일제히 에이피알에 쏠렸다.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에이피알이 아모레퍼시픽을 제치고 단숨에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K뷰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인디브랜드를 중심으로 판도가 바뀌며 기존의 '빅2'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는 모습이다.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6개월도 채 걸리지 않는 인디브랜드들이 선전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특유의 보고체계를 거쳐야 하는 LG생활건강와 아모레퍼시픽의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인 가운데, 새 대표 선임 등 쇄신을 통해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에이피알이 오는 3분기에도 아마존 프라임데이 효과 등을 바탕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잇따르는 호실적 전망에 주가가 연일 신고가를 갱신하면서, 에이피알은 시총 10조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각각 7조원, 4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에이피알의 성장 모멘텀이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에 집중돼 있는 만큼 반짝 인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뷰티 디바이스 등 향후 성장세에 더 주목하는 모습이다. 2만~3만원대의 화장품과 비교해 뷰티 디바이스는 30만원대의 고가 상품인 데다, 화장품처럼 코스맥스 등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자체 생산하고 있어 수익성을 더 높일 수 있는 까닭이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지난달 19일 '아마존 뷰티 인 서울 2025'에서 향후 미용기기를 넘어 의료기기 영역까지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배송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에이피알은 디바이스가 신성장동력으로 역할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디바이스는 글로벌 경쟁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며, 디바이스 성장이 확대되면서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이피알 등을 필두로 K뷰티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자 투자업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K뷰티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시각이 갈리지만 '지금' 잘 나가는 만큼 브랜드사, ODM사, 용기사, 유통사 등 업종을 막론하고 상장(IPO) 및 인수합병(M&A) 시도도 활발한 모습이다. 

      아로마테라피 기반 클린뷰티 브랜드 아로마티카는 최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코스닥 상장 절차에 착수했으며, 유통사 이공이공도 한국투자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유통사인 그레이스는 복수의 증권사 중 주관사 선정을 검토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KKR의 삼화 인수, 태광산업의 애경산업 인수 등 뷰티 딜도 활발한 모습이다. 스킨케어 브랜드 비플레인(모먼츠컴퍼니)과 에이블씨엔씨의 브랜드 어퓨 등도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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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뷰티 호황은 인디브랜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기존 대기업들은 훈풍에서 한발 빗겨선 모습이다. 업계에선 이제 더이상 빅2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재 인기를 주도하고 있는 인디브랜드 위주의 K뷰티 생태계에서는 속도가 중요한데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 등이 남아있는 대기업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기 어렵단 이유에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디브랜드는 화장품 회사라기보다는 마케팅 회사로 봐야 한다"면서 "이제 콘텐츠와 마케팅 싸움이 된 판이라 속도전이 핵심인데, 대기업들은 무거운 몸집에 둔하게 움직이다보니 트렌드 리딩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회의를 위해 담당하는 인디브랜드 사무실을 방문해보면 자유로운 분위기와 직원들 스타일에 놀랄 때가 적지 않다"며 "확실히 기존 대기업과는 전혀 다르다.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이 경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도 위기돌파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음료 자회사 해태htb의 매각을 추진하는 등 체질개선을 시도하고, 10월1일자로 로레알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 이선주 사장을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선임하는 등 쇄신에 나섰다. LG생활건강은 브랜드 '더후'와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낮추고, 포트폴리오 변화와 지역 다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LG생활건강보다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는 평가다. 7551억원을 들여 인수한 코스알엑스가 최근 부진하긴 하지만 이니스프리와 라네즈 등 기존 브랜드들이 선방하고 있다. 코스알엑스 조직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이 인수로 바랐던 것은 브랜드 자체보다도 새로운 분위기를 이식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초기 브랜드 지분투자를 비롯해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인디브랜드 매물들도 열심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콧대가 높아 "국내 브랜드는 깐깐하게 본다", "안전 제일을 추구해 어렵게 돌아간다"는 평들이 뒤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