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자본규제 완화 요청 지속…금융위 TF서 대응 논의
운영리스크, 과거 10년 손실 데이터 반영 방식이 핵심 변수
DLF 사태 때도 논란…재발 방지·사업부문 폐쇄가 제외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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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홍콩 주가연계증권(ELS)·LTV 담합 과징금 부과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과징금이 단순 영업외손실이 아닌 '운영리스크'로 반영돼 위험가중자산(RWA)을 늘리고 자본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기존 8조원까지 추산되던 과징금 규모가 최근 금융당국의 발표에 따라 수천억원 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은행들은 여전히 금융당국에 자본규제 완화를 요청하고 있다. 당국이 생산적금융 활성화를 위한 추가 완화 방침을 내놓은 만큼 충격이 일부 완화될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달 발표한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통해 주식·펀드에 대한 위험가중치(RW) 가중치를 완화하는 방안 등을 발표하고, 앞으로도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은행권 추가 개선과제를 지속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금융회사 전환' TF를 구성하고 △운영·시장리스크 △경기대응완충자본 △유동성 규제 △회계처리와 관련한 이슈(자산재평가, 펀드 관련 연결회계 등) 4가지 부문으로 나눠서 검토할 방침이다.
은행권에서는 이같은 자본규제와 관련해 금융당국에 운영리스크 완화 관련 요구사항을 중점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최근 홍콩 ELS 및 LTV 과징금 부과가 예상되면서 과징금 적용 시 운영리스크에 반영되는 RWA가 조 단위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KB국민은행이 홍콩 ELS 소송 1심에서 승소하고, 금융위원회가 은행별 과징금 부과율 하한선을 1%로 낮추고 은행별 위법 정도나 소비자 보호 노력에 따라 과징금을 대폭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금소법 시행령과 감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홍콩 ELS 관련 '조 단위'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과거 대비 잦아들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장하고 있는 은행권 LTV 담합의 경우 은행별로 3000~5000억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은행들은 운영리스크를 산출할 때 기초금액을 은행 규모나 수익성 지표 등을 기본으로 삼는 영업지수요소(BIC)에 내부손실승수(ILM)를 곱해서 최종적으로 필요한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한다. 대규모 과징금이 생기면 기초금액(손실)이 늘어나고, 내부손실 승수도 올라가서 결과적으로 운영리스크가 급증하게 되는 구조다.
과거 은행권에서는 내부손실승수를 만들 때 과거 10년 동안의 손실 데이터 중 일부를 포함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운영리스크 산출 시 내부손실 승수를 계산할 때 과거 10년간의 손실 데이터를 활용하게 돼 있다"며 "이때 과징금 등 특정 손실을 승수 산정에 포함하느냐, 제외하느냐가 자본비율에 큰 차이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제외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는 게 당국 측의 설명이다. 과징금 관련 사건이 완결됐거나,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됐거나 해당 사업 부문을 폐쇄하지 않는 경우에만 과징금 산정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해외금리연계형파생결합상품(DLF) 사태 이후에도 운영리스크에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은행들은 사모펀드를 팔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당 사업 부문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공모 펀드라도 불완전판매가 있을 경우 해당 사업 부문이 폐쇄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다.
재발 방지 대책 또한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호하기 때문에 운영리스크에서 특정 사건에 대한 과징금을 제외하는 게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은행들은 여러 사고에 공통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금융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리스크 산출 관련 조항 세칙에 있는 사건의 완결, 또는 재발 방지 대책 등의 배제 요건을 보다 명확히 해 달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당장 금융당국이 TF를 구성해 운영리스크 완화 관련 논의를 진행하더라도 당면해 있는 홍콩 ELS 과징금, LTV 담합 관련 과징금을 이번 운영리스크 산출 대상에서 제외하긴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운영리스크 산입을 배제하기 위한 국제 기준에 따르면 관련된 건이 마무리가 돼야 한다"라며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고 과징금 결론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국제 기준을 무시하고 승수에서 제외하라고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ELS·LTV 등 최근 문제가 된 건을 제외하고서라도 과거 은행권의 과태료 및 과징금 산입 건만이라도 일부 배제할 수 있다면 자본비율 부담을 훨씬 덜어낼 수 있을 거라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물론 일부 홍콩 ELS 판매 건은 올해 운영리스크로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은 내주 5년 시효가 만료되는 홍콩 ELS 판매 건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키로 했다. 이와 관련한 1차 제재안을 최근 각 사에 발송했다.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올해 내로 과태료 제재를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지주들은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 보통주자본(CET1)비율을 최소 13%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 과제까지 수행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커진 상태다.
앞서 금융위가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자본비율 완화 방안을 일부 제시하긴 했지만, 기업대출 위험가중치(RW) 완화 등 핵심 조치가 제외되면서 은행권에선 실질적 부담 완화 효과가 미미하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이러자 추가적인 자본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운영리스크가 전체 RWA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은 만큼 당장 관련 완화 방안을 내놓기보다는 기존에 발표한 자본규제 완화 방안을 안착시키고,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바젤 기준을 훼손하지 않는 측면에서 어떤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라며 "은행권에서 꾸준히 운영리스크 관련 완화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자본비율 완화를 폭넓게 검토하는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