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본은 한국서 투자 늘리는데…토종 PEF는 규제와 구조에 '발목'
입력 2025.10.15 07:00
    EQT·KKR·베인…한국 대형 딜 휩쓰는 해외 자본
    토종 PEF, 미드캡 거래에 머물며 존재감 축소
    단일 자산 구조·레버리지 규제가 발목 잡는단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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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요즘 글로벌 하우스들이 한국 자산을 보러 들어오는 빈도가 확연히 늘었다. 단순 탐색이 아니라 실제 딜 검토까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지금이 가격 저점이라고 보고, 자금력과 '볼트온' 전략을 앞세워 국내 PEF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속도로 움직인다." (한 대형 증권사 인수금융본부장)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무게추가 점점 해외 자본 쪽으로 기울고 있다. 과거에는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 PE 등 토종 대형 운용사들이 수조원대 거래를 주도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규제 강화와 여론 부담, 자금 조달 여건 악화로 위축됐다. 그 공백을 글로벌 PEF들이 채우면서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스웨덴계 사모펀드 EQT파트너스는 리멤버앤컴퍼니 지분 47%를 5000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더존비즈온 지분 31.4%를 1조원대 중반에 사들이는 계약을 앞두고 있다. 미국계 KKR은 SK에코플랜트의 환경 자회사 세 곳을 1조7800억원에 인수했고, 화장품 포장사 삼화포장도 7330억원에 매입할 예정이다.

      DIG에어가스 매각도 대표적 사례다. 2019년 맥쿼리PE가 인수했던 회사를 글로벌 산업용 가스기업 에어리퀴드가 최근 4조8000억원대에 인수했다. 베인캐피탈은 HS효성첨단소재 타이어코드 사업부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으며, 블랙록과 블랙스톤도 물류·에너지 분야 자산을 검토 중이다.

      해외 PEF들이 과감한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글로벌 하우스들은 단일 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플랫폼 기업을 인수한 뒤 관련 회사를 '볼트온(Bolt-on)' 방식으로 추가한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키워 매각하기 때문에 개별 자산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다른 자산으로 상쇄할 수 있어 리스크 분산이 가능하다.

      반면 국내 PEF는 대부분 단일 자산에 집중하는 구조다. 복수 자산을 동시에 확보해 시너지를 내기에는 펀드 규모와 자금력이 부족하다. 하나의 투자 성과가 펀드 전체 수익률을 좌우하기 때문에 대형 거래에서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국내 하우스는 보통 단일 자산 중심이라서, 한 건이 잘못되면 전체 펀드 성과가 크게 흔들린다"라며 "그러니 조단위 대형 딜에서는 베팅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레버리지 활용도 큰 차이다. 글로벌 PEF들은 자기자본에 수 배의 차입을 얹어 조 단위 거래를 성사시키지만, 국내는 사모펀드 차입 한도가 총자산의 400%에서 200%로 축소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 금융사 차입 규제까지 겹치면서 해외처럼 적극적으로 레버리지를 활용하기 어렵다.

      규제와 여론의 압박도 토종 PEF에는 치명적이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MBK파트너스를 중심으로 정치권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국내 대형 하우스들이 굵직한 거래에 나서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MBK는 지오영 인수 이후 국내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채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집중하는 중이다.

      글로벌 PEF들이 국내에서 대형 딜을 독식하는 사이, 국내 PEF는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미드캡' 거래에 집중하고 있다. VIG파트너스가 LG화학 에스테틱 사업부를 2000억원에, 스틱인베스트먼트가 크린토피아를 6000억원에 인수했다. 웰투시인베스트먼트는 에스아이플렉스를 4300억원에, 어펄마캐피탈은 폐기물업체 CEK를 4000억원에 인수했다.

      글랜우드PE가 LG화학 수처리사업부를 1조4000억원에 인수한 것이 올해 국내에서 나온 거의 유일한 조 단위 딜이었다.

      국내 PEF 업계에서는 단일 자산 구조와 레버리지 한계가 결국 제도와 시장 환경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처럼 다양한 자산을 동시에 묶어낼 자금력과 운용 자유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규제까지 겹치니 리스크 분산이 쉽지 않다. 대형 거래에서 국내 하우스들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PEF들이 스스로 체질 개선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제도적 보완이 병행되지 않으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이대로 고착화되면 국내 자산의 주도권이 해외로 넘어갈 위험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