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조정 속에서도 바이오 계열사는 비켜서
美中 갈등에 의약품 제조·생산은 불확실성↑
경쟁 속 수주 고민…분할·증설로 대책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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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사업을 그룹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대기업 총수들이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도 바이오 신사업에 지속해서 힘을 싣고 있다. 몇몇 그룹사는 강도 높은 사업 조정(리밸런싱)과 인사 교체를 단행했지만, 바이오 계열사들은 이런 흐름에서 비켜선 모습이다.
SK그룹은 올해 고강도의 리밸런싱을 추진하는 가운데서도 SK바이오팜과 SK팜테코 등 주요 바이오 계열사를 중심으로 내실 있는 성과를 올렸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뇌전증 치료제인 '엑스코프리'의 판매를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 등 미국 외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팜테코는 글로벌 빅파마와 비만치료제의 원료의약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트랙레코드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비만치료제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SK팜테코가 이 수주를 바탕으로 규모 있는 후속 계약을 체결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런 성과들은 SK그룹이 리밸런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라 눈여겨볼 만하다. 바이오 계열사들이 투자와 인수 등을 통해 사업 외연을 넓혀나가는 동안 그룹사 내 다른 계열사들은 강도 높은 운영 개선을 요구받았다. 부진한 계열사는 수장이 바뀌거나 매각 대상에 올랐고, 이는 그룹사 내 임원을 대상으로 한 인사 칼바람으로도 이어졌다.
바이오 계열사는 이런 흐름에 다소 비켜선 모습이다. 되레 인수나 투자 대상을 적극적으로 물색하며 SK그룹이 바이오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리밸런싱 기조 속 미국 바이오 기업을 인수하며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 나섰다. 방사성의약품(RPT) 신약 후보물질을 도입한 것은 물론, 현재도 후속 제품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역시 그룹사가 위기 경영 기조일 당시 독일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을 사들였다. 이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적자 상태의 재무구조를 다소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다.
비상 경영 체제에서 바이오 계열사가 축소나 감축의 대상에서 벗어난 것은 SK그룹뿐만이 아니다. LG그룹 또한 기업의 근간인 석유화학 사업 부진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도 신약 개발 사업은 놓지 않았다.
LG그룹에서는 국내 바이오 산업의 요람으로 꼽히는 LG화학 생명과학본부가 바이오 사업을 맡고 있다. LG화학은 암 치료제를 중심으로 바이오 사업을 강화하고 있으며, 그동안 매각과 인수를 통해 사업 재편 작업을 추진해 왔다. 앞서 미용의료(에스테틱)와 체외진단용 의료기기 사업부를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도 암 치료제를 보유한 아베오는 수천억원에 사들였다. 인수를 통해 미국에서 승인을 받은 신장암 치료제를 확보하게 됐다.
삼성그룹과 롯데그룹도 주력 사업의 위기 속에서 바이오 사업 지원에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중갈등과 관세위협이 심화하며 경영 환경은 불확실해졌지만, 성장 동력을 육성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기론이 불거졌을 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수주잔고를 빠르게 높였다.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론 속에서 허덕였을 때는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에 메가플랜트를 짓기 위한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총수들 역시 바이오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챙기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오래전부터 바이오 사업을 제 2의 반도체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최근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공장을 직접 방문해 수주 확대와 역량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다만 그룹사의 지원에도 바이오 계열사의 경영 환경은 녹록잖다. 신약 개발 기업은 수천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비용을 지속해서 투입해야 하는 데다 상업화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려 수익을 내는 곳이 드물다. 이는 국내 주요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실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제품이나 이를 보유한 기업을 인수 대상으로 물색하고 있다. 이미 상업화가 진행된 파이프라인을 가져와 판매하거나, 초기 단계 물질을 도입한 뒤 다른 기업에 기술 수출해 수익을 올리는 등 전략은 다양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CDMO 업체들은 경쟁 심화로 수주를 확대하는 데 애를 쓰는 모습이다. 수주 규모를 기대만큼 늘리긴 어려운 가운데 항체약물중합체(ADC)와 세포유전자치료제(CGT)를 비롯한 새로운 분야에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관세 압박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나 미중갈등이 심화되면 또 다른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기존에 보유한 미국 공장을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현지 생산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 개발 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분할을 택했다. 고객사로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술 유출 우려가 나온 터라 이를 불식하기 위한 조처다.
다만 분할을 향한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론자를 비롯한 글로벌 CDMO 기업들은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신약은 개발하지 않는다"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그룹사 내 함께 있기 때문에 분할 이후 기존의 기술 유출 우려가 해소될진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