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끌리는 대어급 M&A…매도자 장고에 절충안 도출 난항
입력 2025.10.22 07:00
    단계마다 수개월씩 지연…관계자들 피로 호소
    매도자는 더 받으려 버티는데 원매자는 난색
    내부 사정상 가격 마지노선이 걸림돌 되기도
    웬만큼 매력도 없는 M&A는 '장기미제' 우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M&A 시장에선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후에도 쉽사리 끝을 맺지 못하는 중량급 거래들이 여럿 나타나고 있다. 매도자가 아깝게 내놓은 자산의 몸값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하는 경우도 있고, 투자자와 관계 때문에 일정 금액 이하로 팔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 거래 관계자들은 일정이 질질 끌리는 데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HS효성첨단소재는 상반기부터 타이어 스틸코드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5월 예비입찰, 6월 본입찰을 거쳤는데 우선협상대상자는 7월 말에야 선정됐다. 당초 JKL파트너스나 스틱인베스먼트가 유력하다는 예측이 있었지만 베인캐피탈이 낙점됐다. 원매자들의 가격 조건이 썩 성에 차지 않아 장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협상자 선정 후 석 달이 가까워지지만 본계약 체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거래가 사실상 중단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아직 협상 테이블은 차려져 있는 상황인데 매도자와 매수자가 생각하는 금액차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절충점을 찾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 거래 관계자는 "캐시카우를 내놓는 HS효성첨단소재 입장에선 더 받고 싶어 하지만 인수자는 인수자대로 논리가 있다 보니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며 "매도자가 서두르지 않고 있어 장기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코엔텍 매각도 더디게 진행 중이다. 6월말 예비입찰을 진행했는데, 본입찰은 9월 초에 이뤄졌다. 본입찰엔 IMM PE, 어펄마캐피탈, 거캐피탈 등이 참여했다. 본입찰 직후 우선협상자가 선정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몸값을 둔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매자들은 서로 엇비슷한 가격을 제시했는데 매도자 E&F PE·아이에스동서 컨소시엄이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이에스동서가 아쉬운 상황으로 전해진다.

      아이에스동서는 코엔텍 투자 당시 후순위 투자자로 나섰다. 원매자들이 제시한 금액에 코엔텍을 팔 경우, 선순위 투자자들이 먼저 이익을 취하면 아이에스동서는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F PE가 매각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는데, 주요 출자자(LP)인 아이에스동서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매도자 컨소시엄 내부의 의견 조율 및 원매자와의 가격 조정 작업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까진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 거래와 달리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민간 M&A라지만 매각자 측의 의사 결정이 너무 지연되다 보니 각 원매자와 자문사, 금융사들이 답답함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애경그룹은 올해 초부터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했다. 채권은행이 선제적 재무구조 개선을 촉구하자 그룹의 캐시카우 매각을 결단했다. 6월 중순 예비입찰을 거쳤는데 본입찰은 두달여 후에 진행됐다. 일부 원매자가 입찰 시한을 늦춰달라 요구했고, 경쟁 구도를 바란 매도자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애경그룹은 지난달 태광그룹 컨소시엄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양 측은 이달 15일 전에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는데 시간을 넘겼다. 태광그룹 쪽은 14일 인수 이사회 결의를 마친 반면 매도자는 그때까지 의사를 결정하지 못했다. 금액보다는 직원 처우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계약이 체결됐다.

      더존비즈온 M&A는 상반기부터 '가능성'이 거론됐고 이후 점차 구체화하는 양상을 띠었다. EQT파트너스가 인수 주체로 떠올랐는데 아직 거래 구조는 유동적인 모습이다. 여러 모로 난이도 높은 거래란 평가다.

      더존비즈온은 점점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최대주주 김용우 회장은 굳이 매각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자로선 매도자와 조율하는 것도 힘든데 2대주주 지분 인수, 소액주주 지분 대상 공개매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더존비즈온에 딸린 언론사 처리 문제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더존비즈온이 좋아지고 있어 최대주주로선 꼭 지금 팔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거래가 성사될 것으로 보지만 구체적인 조건이 정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해외 원매자가 있는 거래(DIG에어가스, CJ피드앤케어), 안전성 높은 거래(여주·나래에너지서비스), 인기 산업 거래(서린컴퍼니, 런던베이글뮤지엄) 등은 무난하게 성사됐다. 그러나 이 외에 매도자의 기대치가 높고 매력도가 불투명한 거래들은 시간이 오래 끌리거나 결국 무산되기도 하는 분위기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독 한국 M&A 시장의 거래 배수가 높은 상황인데 원매자 입장에선 이를 정당화하기 쉽지 않다"며 "웬만큼 매력도 높은 거래가 아니라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