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빅4’로 묶는 게 맞나…삼일 독주 속, 중견 회계법인 부상
입력 2025.10.22 07:00
    오랜기간 '빅4'로 묶여왔지만
    한영·안진 입지 흔들
    중견 회계법인들 빠르게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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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계법인들이 2024 회계연도 결산을 마무리한 가운데, 소위 ‘빅4’로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 간의 격차가 한층 벌어지고 있다. 업계 1위 삼일회계법인이 독주 체제를 굳히는 사이, 나머지 빅4의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반면 중견 회계법인들은 덩치를 키우며 빅4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한영과 안진을 여전히 빅4로 분류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삼일회계법인은 지난달 30일 2024 회계연도(2024년 7월~2025년 6월) 실적을 공시했다. PwC컨설팅(프라이스워터하우스컨설팅)과의 합산 매출은 전년 대비 10.1% 증가한 1조5554억원을 기록했다. 회계법인 본체 매출은 1조1094억원, 컨설팅 부문은 4460억원이다.

      특히 경영자문 부문이 13.8% 성장하며 전체 성장을 견인했다. 회계감사(4.3%), 세무자문(6.2%) 부문도 안정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민준선 대표 취임 이후 인력 확충과 해외 크로스보더 딜 확대가 매출 상승의 핵심 동력”이라고 평가한다. 기존 강점이던 실사(FDD)뿐 아니라 M&A 자문, 리스크 관리 등으로 외연을 넓히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더불어서 인재 기용이나 파트너 승진에 있어서도 특정 학교나 파벌에 치우지지 않는 '성과주의'가 성장의 밑거름이란 설명이다. 

      삼정회계법인은 지난 6월 말, 2024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실적을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6% 증가한 8755억원이었다. 세무·경영자문 부문이 소폭 성장했지만, 회계감사 매출은 1.8% 감소했다.

      삼정은 과거 삼일과 ‘빅2’ 구도를 형성했지만, 이번 결산 기준으로 매출 격차는 6800억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업계에서는 “인건비 증가 등으로 그간 공격적으로 확장을 해오던 삼정이 상대적 성장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빅4 내 3, 4위를 다투는 한영과 안진은 M&A 시장 부진의 직격탄을 맞으며 경영자문 부문 매출이 각각 5.3%, 17.2% 감소했다. 한영은 컨설팅 매출이 이를 일부 보완했지만, 안진은 회계·컨설팅 부문 모두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다.

      특히 안진은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미지 회복이 더디다는 평가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여파를 이유로 삼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다”며 “이렇다 할 차별 전략 없이 ‘만년 4위’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감사 부문에서도 삼일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의 외부감사를 모두 따내며 사실상 시장 주도권을 확보했다. 이 경쟁에는 안진 등 다른 빅4도 참여했지만, 두 건 모두 삼일이 수임했다. 한 빅4 관계자는 “지정감사제가 도입되며 경쟁이 줄었음에도, 삼일은 자율 수임 시장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중견 회계법인들의 상승세도 눈에 띈다. 삼덕회계법인은 매출 1800억원을 돌파하는 등 대주·신한회계법인과 함께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일부는 특정 산업군에 특화된 자문 조직을 강화하며 틈새시장을 공략 중이다.

      업계에서는 “빅4로 묶이는 근거가 글로벌 멤버십 덕분이지만, 그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은 로컬 회계법인들이 약진하고 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PwC가 글로벌 1위가 아님에도 삼일이 독주하는 이유는 한국 시장에 맞춘 현지화 전략 덕분”이라며 “반면 한영·안진 등은 글로벌 본사의 표준화 전략에 의존하면서 국내 시장에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일의 독주, 삼정의 정체, 한영·안진의 부진, 그리고 중견사 약진까지. 시장 구도는 점점 ‘빅4’라는 전통적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회계법인 시장의 경쟁 축은 글로벌 네트워크 여부가 아니라, 조직의 민첩성·인력 역량·산업 전문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앞으로 회계·자문 시장은 ‘규모의 경쟁’이 아니라 ‘전략의 경쟁’이 될 것”이라며 “삼일이 현지화 전략으로 독주하듯, 각 법인도 자기만의 정체성과 속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