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MBK 투자실패 인정, 금감원장은 LBO 지적…PEF '가시밭길' 예고
입력 2025.10.23 07:00
    국민연금 실패 인정…공적 자금 책임 논란 확산
    금감원장 "LBO에 출자 자체가 부적절"…PEF 본질 정조준
    규제의 축 이동…'레버리지 비율' 수준서 '거래 구조'로
    연기금·공제회 부담 커져…출자 위축 불가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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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모펀드(PEF) 규제가 이번 국정감사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국민연금은 PEF 투자 실패를 사실상 인정했고, 금융당국은 PEF 투자 구조 전반에 대해 강도 높은 문제 제기를 쏟아냈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연기금이 '탐욕형 인수·매각 구조'에 활용됐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레버리지를 일으켜 기업을 인수하는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 자체에 대한 적절성 논란도 불거지면서, 사모펀드의 근간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규제의 초점이 단순히 레버리지 한도를 낮추는 정도에서 논의됐다면, 이제는 PEF의 거래구조와 수탁자 책임으로 그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서원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실패한 투자라고 말씀드린다. 죄송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국민연금은 이 자리에서 홈플러스 인수 당시 5826억원을 투입했으나 지금까지 회수한 금액은 3131억원에 그쳤고, 잔액 4884억원에 대한 회수는 불확실하다고 보고했다.

      언뜻 국민연금이 거래하는 수많은 PEF 운용사들 가운데 하나인 MBK파트너스에 대한 투자 실패를 시인한 듯 보이지만, 이러한 '먹튀 논란'이 하나의 실패 사례가 아니라 전체 PEF 시장 구조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금융당국이 PEF 먹튀 논란에 불을 지폈다.

      21일 국감장에 출석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기관투자자가 LBO 방식의 사모펀드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ESG 기준에 맞느냐"는 점에 대해 2015년부터 계속 지적해왔다"라며 "매우 부적절하다"라고 못 박았다. 이 원장은 과거 기금운용위원 시절부터 이 구조에 문제의식을 가져왔음을 밝히면서, 금감원이 사모펀드 관리·감독 체계를 대폭 강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또한 "스튜어드십코드 이행평가를 금감원이 직접 담당할 수 있게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일부 위임받으면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감독기관의 권한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평가다.

      홈플러스 사태가 터졌을 당시만 하더라도, PEF 규제는 차입비율 상한을 순자산 대비 400%에서 200%로 줄이는 정도에서 논의됐다. 실제로 현재 국회에는 기관전용 PEF의 차입 한도를 낮추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다만 국내 바이아웃 전문 운용사들은 순자산 대비 차입 규모(LTV)가 200%를 밑도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규제를 신경쓰는 분위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는 단순히 레버리지 비율 조정에 그치지 않고, 차입을 기반으로 기업을 인수·매각하고 자산을 회수하는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PEF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더해 신임 금감원장은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강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있는 것은 사모펀드의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안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여당은 공모펀드에만 적용하던 분기별 자산운용·영업보고서 제출 의무를 일반·기관전용 사모펀드에도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물론 실제 통과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은 투자자들과의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 PEF에 부담이다.

      PEF들의 펀딩 난이도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정치권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놓인 연기금과 공제회는 PEF 출자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국회가 스튜어드십코드 활동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기관투자자들은 출자에 앞서 PEF 구조와 운용계획, 자산담보·배당구조·현금흐름 회수 전략 등을 면밀히 평가하게 될 공산이 크다.

      새마을금고 출자 비리 사태와 감사원의 연기금·공제회 대체투자 감사 등으로 움츠러들었던 출자시장이 올해 들어 살아났지만, 다시금 움츠러들 전망이다. 가뜩이나 최근 주식시장에 유동성이 집중되면서 기관들이 PEF 출자를 줄이고 주식 비중을 늘리려는 추세라, 신규 펀드 조성에 나서는 운용사들은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금융당국의 PEF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모펀드들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현재 PEF 협의회는 협회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비상설 체제 아래에서는 정책 대응에 한계가 있는 탓에, 협회로의 전환을 통해 상설 사무국을 설치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당국과 소통하겠다는 복안이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최근 정치권의 PEF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이번 국감이 중요하다고 봤는데, 생각보다 발언 수위가 셌다"라며 "PEF가 이제는 단순한 수익성 뿐만 아니라 구조적 지속가능성까지 담보해야 할 가능성이 커져, 전략적으로 고려해야할 것이 많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