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자사주 기반 EB 발행에 사실상 제동
블록세일 문의 급증했지만 코스피 랠리에 수요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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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자사주 처분에 나섰지만, 금감원의 교환사채(EB) 제동과 PRS(자기주식 신탁) 규제 강화로 차선책이 막히고 있다.
대체 수단으로 블록세일(시간외 대량매매) 수요가 급증했지만, 코스피 랠리 국면에서 할인율 한계로 수요처를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반기들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본격 추진되면서, 기업들은 소각 전에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찾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특히 자사주를 기반으로 EB를 발행해 현 경영진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랐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3분기 중 교환사채 발행 건수는 50건, 총 1조4455억원에 달해 전년 전체 발행 규모(28건, 9863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다만 자사주 기반 EB에 대한 감독 당국의 시선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금감원은 지난 20일 기업이 자사주 대상 EB를 발행할 때 ▲다른 자금조달 수단 대신 EB를 선택한 이유 ▲발행 시점의 타당성 ▲기존 주주이익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지침을 강화했다. 사실상 자사주 EB 남용에 대한 경고성 조치다.
PRS(주가수익스와프)도 비슷한 흐름이다. 최근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본격 논의되자, 금감원은 PRS가 자사주 활용의 '우회로'로 쓰이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 국회의원이 금융감독원에 주요 증권사들의 PRS 계약 내역을 요청했고, 금감원 자본시장감독국 파생상품팀이 관련 자료를 취합 중이다.
결국 기업들은 남은 통로로 블록세일을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주요 증권사 IB(기업금융) 부서에는 자사주 매각 관련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사주를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한 상장사 대부분이 현금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자사주 기반 EB에 제동이 걸리다 보니 블록딜을 문의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매도 의사는 넘치지만, 받아줄 투자자가 없다는 점이다. 통상 할인율은 5~10% 수준인데,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조건으로는 매수 유인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직접 취득하거나 신탁을 통해 보유한 자사주는 거래소 규정상 가격 협상 폭이 종가 대비 ±5%로 제한된다.
한 기관투자자는 "최근 한 대기업의 블록딜 태핑을 8% 할인율 조건으로 받았지만 살 이유가 없었다"라며 "코스피가 3800을 넘어서는 상황으로, 수요처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코스피는 기록적인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초 사상 처음으로 3500선을 돌파한 뒤 3600, 3700을 넘어 3800선을 돌파했다. 연초 대비 상승률이 60%에 달하며, 1998년(49.93%)을 넘어 1999년(82.78%)의 상승률 기록에 근접하고 있다. 시장이 과열된 만큼, 추가 상승 여력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자사주를 처리해야 하는 기업은 넘치는데, 투자처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장 환경이 워낙 뜨거워 단기 차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할인율 상한이 걸려 있어 실질적으로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