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사들 샤힌 가동 앞두고 산업 조정 논의
3대 산단 중 울산이 상대적으로 더딘 분위기
각자 "효율성 높다" 주장…샤힌 포함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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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지평을 바꿀 샤힌 프로젝트가 내년 가동된다. 이에 앞서 국내 기업들의 사업 재편 작업이 한창인데 샤힌 사업 소재지인 울산의 재편 작업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 중이다. 샤힌 사업을 하는 에쓰오일, 계열사와 수직계열화된 SK지오센트릭, 생산능력이 가장 큰 대한유화 간 이해관계가 달라 합의안 도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샤힌은 에쓰오일과 그 대주주 사우디 아람코가 9조원을 들여 울산에 짓는 석유화학 복합 시설이다. 2023년 첫 삽을 떴고, 현재 공정률 85%로 내년 가동을 앞두고 있다. 원유 정제 절차를 거치 않고 곧바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 공법이 세계 최초로 적용된다. 이 경우 경쟁사 대비 수율은 3~4배 올라갈 전망이다.
국내 석유화학사들은 시장이 부진과 호황을 오가는 사이 제대로된 산업 재편 논의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2년 전 샤힌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본격 가동되면 원가 경쟁을 할 수 없으니 그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도 석유화학 산업 재편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지난 8월 연내 최대 370만톤 규모 납사분해시설(NCC) 감축 계획을 내달라 석유화학 업계에 주문했다. 국내 생산능력(1470만톤)의 4분의 1에 달한다. 3대 화학(여수·대산·울산) 단지에서 각각 하나 이상의 감축안이 나와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아직 정부에 공식적으로 재편 방안을 낸 곳은 없는데 대산의 진도가 빠른 편이다. 롯데케미칼은 자사 설비를 HD현대오일뱅크와 합작사인 HD현대케미칼에 넘기는 방식의 통합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손을 맞춘 경험이 있어 상대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용이할 것이란 평가다.
에틸렌 생산능력이 가장 큰 여수에선 여천NCC를 중심으로 감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DL그룹이 갈등을 빚으며 위기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감축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순 없는 상황이다. 일부 공장은 가동을 멈췄고, 주주사 대여금을 출자전환하는 안도 거론된다. 관계가 좋은 LG화학과 GS칼텍스도 연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샤힌 사업의 소재지인 울산의 사업재편 움직임이 가장 더딘 분위기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냔 시선을 받기도 했다. 지난 9월 산업통상부 장관이 울산을 찾아 신속한 석유화학 사업재편을 촉구했다.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3사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재편 논의를 시작했지만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울산 쪽 자구책 마련이 늦다는 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라며 "최근 울산 지역 업체들이 MOU를 체결하고 외부 컨설팅도 맡기겠다고 했으니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은 세 곳 단지 중 생산능력이 가장 적다 보니 공급 과잉에 따른 위기감이 적은 면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주요 석유화학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면이 크다는 평가다. 합작이나 설비 중단 등을 논의해야 하는데 서로 자사의 설비가 경쟁력이 있다거나 가치가 높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울산에서 가장 생산능력이 큰 대한유화는 기존 NCC사 중에선 설비 효율성이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SK지오센트릭의 경우 SK에너지와 원재료 공급 및 제품 판매 등 수직계열화로 얽혀 있다. 좋은 조건에 원재료를 받아 마진을 붙여 팔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외부 컨설팅사를 정하는 데도 서로 유리한 곳을 택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에쓰오일과 샤힌 프로젝트다. 지금 석유화학 산업 재편 논의는 샤힌에 비해 설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데서 시작됐다. 이를 감안하면 수율이 월등한 샤힌은 빼고 나머지 기존 설비들을 효율화하는 안을 검토해야 하지만 대한유화와 SK지오센트릭이 이를 반길 리 없다.
대한유화와 SK지오센트릭 간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두 회사의 NCC 설비 일부를 에쓰오일이 받아 공동운영하는 안도 거론된다. 이 경우에는 두 회사가 사업을 현물출자하고 에쓰오일은 현금을 넣어서 운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할 때까지 추가 자금이 필요해 재무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울산 산단 내 업체들이 서로 경쟁력이 있다는 입장이라 의견 조율이 늦어지고 있다"며 "에쓰오일도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될 때까지 들어갈 자금이 많아 적극 나서기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3개 산업단지 모두 논의 중이고 울산도 완전히 손을 놓지 않고 재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정부는 기업들이 가져오는 안의 방향성만 관리할 것인데 샤힌이 조정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