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의 당좌수표 유동화, 사실상 차입성 조달…신용도 미칠 영향은?
입력 2025.10.27 07:00
    SK에너지, 당좌수표 유동화 발행잔액 4911억원
    "신용보강 효과 미미…발행사 신용도 믿고 투자"
    실질적 차입금 부담 감안시 신용도 부정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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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이노베이션의 정유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가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당좌수표 유동화 거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당좌수표 유동화가 우회조달로 평가받으며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회계상 차입금으로 인식되지 않는 데다 실질적으로 신용보강이 어렵다는 점에서 재무건전성 관리의 사각지대로 꼽히고 있다.

      SK에너지는 당좌수표 유동화를 단기자금 조달처로 활용해 왔다. 현재 관련 발행잔액은 4911억원으로 집계됐다. 통상 만기는 40일 내외로 차환 발행을 통해 자금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당좌수표는 은행에서 발행하는 즉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수표를 말한다. 주로 기업 간 결제 수단으로 활용된다. 은행이 당좌수표를 인수한 이후 특수목적법인(SPC)에 신탁 수익증권을 매각한다. 이후 SPC가 수익증권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구조다.

      해당 유동화는 특약에 따라 신탁원본과 관련한 현금흐름을 당좌수표에 부수한 권리인 이득상환청구권을 통해 수령하도록 구조화됐다. SK에너지는 이득상환금의 형태로 당좌수표 액면금액 합계액을 유동화증권 만기에 맞춰 지급한다.

      당좌수표 유동화 거래는 SK그룹 계열사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난 2023년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 SK엔무브 등에서 일제히 해당 구조로 자금을 조달했고 SK에너지가 최근까지도 활용하고 있다. 정유사 특성상 유가·정제마진 변동에 따라 운전자금 수요가 급격히 바뀌는 만큼, 단기자금 확보를 위한 새로운 루트를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이 거래가 재무제표상 실질 부채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겉으로는 유동화 구조를 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발행사 신용을 담보로 한 단기성 차입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NICE신용평가는 "유동화 거래를 통해 당좌수표의 실질적인 납부를 유동화증권 만기만큼 이연함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관련 채무는 회계상 차입금이 아닌 매입채무, 미지급금, 기타지급채무 등 기타금융부채로 계상되는 경우가 많아 재무비율 관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도 유사한 시각을 보인다. 한 기관투자자는 "이득상환청구권이 있다고 해도 신용보강 효과는 미미하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낮아 결국 발행사 신용도를 믿고 투자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우회조달 수요로 발행이 나오는 건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발행사 신용물로 간주해 판단한다"며 "정유·석유화학 업종으로 묶여 내부적으로 매수 제한이 걸린 곳들도 많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실질적인 차입금 부담을 감안했을 때 SK에너지의 신용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국내 신용평가 3사는 SK에너지의 신용등급을 'AA(안정적)'로 평가했다.

      SK에너지는 이미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평의 등급 하향 트리거를 건드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K에너지는 SK이노베이션의 핵심 캐시카우로 그룹 전반의 신용을 떠받치고 있지만, 정제마진 약세와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맞물리며 수익성 회복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 대비 자산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영업자산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비율도 눈에 띄게 하락했다. ▲2022년 말 23.2% ▲2023년 말 7.3% ▲2024년 말 4.4% ▲2025년 3월 말 -0.6% 등의 순이다. 해당 수치는 신평사들의 등급 하향 조정 검토 요인으로 등장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다. 부채비율 역시 2022년 말 231.6%에서 올해 3월 말 311.2%로 치솟았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현금창출력 회복이 더뎌지고 차입성 조달이 늘어날 경우 등급 안정성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에너지 관계자는 "정유업 특성과 재무 구조를 감안할 때 당좌수표 유동화는 금융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한 단기 조치"라며 "당사의 현금과 차입금 규모를 고려할 때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동화를 통해 오히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한 점은 신평사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