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무죄', 지창배는 '유죄'…변곡점 맞이한 고려아연·하이브
입력 2025.10.27 07:00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 일단락, 고려아연은 내부통제 지적 부상
    법리 해석 영향 예상도…하이브 방시혁 의장에도 영향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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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카카오의 시세조종 의혹은 일단락됐다.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는 횡령 혐의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고려아연과 하이브를 둘러싼 법적 분쟁 및 법리 해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는 지난 10월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카카오 및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법인 등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인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김범수 창업자와 관련된 시세조종 의혹 사법 리스크는 한풀 꺾였다는 평가다. 김 창업자는 2023년 2월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주가를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게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아왔다.

      앞서 8월 말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결심공판에서 김 위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예상보다 높은 검찰의 구형에 카카오 주가가 출렁이는 등 재판 결과에 대한 주목도가 높았다. 향후 검찰이 항소를 제기할 경우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히 형사사건의 경우 새로운 증거나 논거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재판부에서도 1심 판결을 뒤엎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바뀌는 사례는 극히 적다”며 “현재까지 나온 증거와 진술 등을 고려할 때 재판부가 무죄를 판정한 셈이라, 높은 구형을 제시한 검찰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3년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둘러싼 시세조종 의혹은 시장의 주목도가 가장 큰 형사재판이었다. 대기업 총수가 포함된 형사 재판인 만큼 대부분의 주요 대형 로펌이 참여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김앤장과 세종을,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은 세종과 광장을 선임했다. 카카오 법인은 김앤장, 세종, 광장이 함께 대리했다.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는 율촌이 변호를 맡았다.

      통상 1심 진행 시 법률비용이 가장 높고, ‘무죄’일 때 성공보수가 상당한 점을 고려하면 로펌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앞서 율촌 변호사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카카오 측 임직원들과 함께 입건됐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번 판결에서 유일하게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횡령·배임)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펀드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근거로 삼았다. 

      지창배 대표가 이끄는 사모펀드(PEF)인 원아시아파트너스는 95% 이상의 자금을 고려아연으로부터 출자받은 펀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 대표와 중학교 동창 사이로 알려져있다.

      판결문은 “피해 펀드의 출자자들이 일반 투자자가 아니고, 피고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소수의 전문투자자들”이라며 “피해 펀드에 실질적인 손해가 발생했거나 그 출자자들이 문제를 제기해 위 범행에 대한 수사가 개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참작해야 할 사정”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 측은 “원아시아 펀드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특수관계자 펀드’였음을 명확히 한 부분”이라며 “고려아연의 원아시아 출자가 통상적인 회사 자금 운용이 아닌 ‘친구에게 맡긴 돈’이라는 성격을 법원이 판결문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창배 대표가 펀드 자금을 유용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고려아연의 컴플라이언스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내부 감시 기능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수천억원의 회사 자금이 회장 개인의 판단에 따라 운용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풍 측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2019년 설립된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당시 최윤범 대표이사 사장 취임 직후인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총 5600억원을 출자했다. 이 과정에서 상장사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이사회 보고, 리스크 심사, 외부 실사 등의 절차가 없었다. 현재까지 고려아연은 원금 회수를 하지 못한 상태다.

      고려아연 측은 “펀드 등 모든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와 출자를 내부 위임전결 규정과 관련 법령에 의거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집행해 왔으며, 법령을 위반한 사항은 전혀 없다”며 “펀드 구조상 GP는 출자금을 독립적으로 운용하고 집행하며, 이는 GP의 고유 권한이자 책임이다. 특히 LP가 GP에 속한 특정 개인의 행위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의 법적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영풍·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 첫 변론기일을 이달 22일 진행했다. 재판부는 양측 입장을 정리했으며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12월 8일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재판부 판결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 건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자본시장 내 투자 행위에 대한 법리적 판단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수 창업자 혐의의 핵심도 ‘시세조종 의도를 가지고 직접 지시했는가’가 입증 포인트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창업자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고, 직접적인 지시를 내린 증거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카카오 측이 시세조종 의도를 가지고 주식 매입에 나섰다는 혐의 역시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봤다. 관계자들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건도 근본적인 위법 혐의는 비슷하다. 방 의장이 ‘의도적으로’ 상장 준비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속였는지, 그리고 그렇게 얻게 된 차익 실현이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느냐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 및 일반 주주들이 금전적 피해를 입었는지도 쟁점이다.

      법원이 당시 카카오 측의 매매 양태가 시세조종성 주문에 해당한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만큼, 향후 투자 과정에서 주식 매매 방식과 시장 개입 행위 판단 기준도 다시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