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돈보따리 풀기 예고에…대응 전략 마련 들어간 PEF들
입력 2025.10.28 07:00
    정부, 내년 모험자본 중심 '유동성 확대' 예고
    시장성·정책형 자금 잇따라 시장에 유입 전망
    밸류에이션 과열·몸값 경쟁 재연 가능성 우려
    • 정부가 내년 자본시장 전반에 걸친 ‘유동성 확대’ 정책을 예고하면서, 사모펀드(PEF) 운용사들도 대응 전략 마련에 들어가고 있다. 정책자금과 더불어 모험자본 등 시장성 자금도 투자시장으로 본격 유입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따른 밸류에이션 거품 가능성도 점쳐진다. 

      두둑한 '실탄'을 장전해 놓은 PEF들도 적지 않은 가운데, 규모가 한정된 국내 시장에서는 투자 경쟁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연간 벤처투자 규모를 40조원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모태펀드 출자예산을 두 배 이상 늘리고,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 민간자금 유입 통로를 다변화해 벤처·성장자본 시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발행어음이나 IMA(종합자산관리계좌)로 조달한 자금의 일정 비율을 국내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사실상 증권사 조달자금이 스타트업·벤처·성장기업으로 향하는 통로가 제도적으로 열린 셈이다. 기존에 제한적이던 기업금융 자금이 고위험·고수익 영역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중기부 정책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모빌리티·친환경에너지·로봇·빅데이터·AI·사이버보안·네트워크·우주항공·해양·차세대원전·양자기술 등이 중점 육성 산업으로 지정됐다. 정부의 재정 확대 또는 산업전환이 나타날 경우 해당 부문에 투자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재정 확대 기조와 정책형 자금이 결합되면, 내년부터 벤처 및 사모투자 시장 전반으로 유동성이 대거 풀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동안 침체됐던 벤처 및 사모투자 시장의 거래 모멘텀이 적극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유동성이 풀리면서 다시금 밸류에이션 과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과 초저금리 기조로 시중 유동성이 급격히 늘면서, 자산 전반의 밸류에이션이 급등했다. 비대면·플랫폼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 기대감이 과열됐고, 벤처·스타트업뿐 아니라 중견·대기업의 M&A 거래까지 몸값이 치솟았다.

      당시 PEF들도 대규모 펀딩에 성공하며 인수전에 적극 나섰고, 실적 대비 과도한 평가가 이뤄지는 ‘머니게임’ 양상이 확산됐다. “실물보다 돈이 앞서간 시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유동성 주도형 밸류에이션 버블이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면서, PEF들은 내년 전략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유동성 예고에 시장 활성화 기대도 있지만, 경제가 따라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쟁으로 인해 밸류에이션이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며 “국내 시장이 좁은데 그중에서도 투자할 만한 곳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좋은 투자처에는 모두가 몰리고, 자연스레 몸값 경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학습된 사이클을 보면, 엑시트를 해야 하는 PEF들로서는 몇 년 뒤에 ‘더 비싸게’ 팔 수 있을까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거래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가운데, 한동안 이어진 M&A 시장 침체에 성과를 내지 못한 하우스들이 적지 않아 ‘딜을 해야 하는’ 곳들이 선제적으로 나선 분위기다.

      EQT파트너스는 아크앤파트너스로부터 리멤버컴퍼니(리멤버 운영사)의 경영권 지분(47%)을 인수했다. 거래는 지분 100% 기준 기업가치가 5000억원대 중반으로 진행됐다. 2021년 아크앤파트너스가 리멤버앤컴퍼니 지분을 1100억원에 인수할 당시와 비교하면 4년 만에 기업가치가 두 배 이상 올랐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JKL파트너스로부터 크린토피아 인수 단독협상권을 확보하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PEF들보다 높은 가격인 7000억원에 육박하는 인수가를 제시하며 거래가 속도를 내고 있다. 2조2000억원 규모로 결성된 블라인드펀드 ‘스틱오퍼튜니티제3호’의 소진율은 50% 수준이고, 투자 기간이 내년 2월까지다. 

      한동안 펀딩 시장이 침체됐지만, 한편으로는 ‘빈익빈 부익부’ 기조가 펀딩 시장에서 계속되며 대규모 실탄을 보유한 운용사들이 적지 않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고려아연, 올해 홈플러스 사태 등으로 투자 활동이 다소 주춤했다. 국내 기존 대형 플레이어인 IMM인베스트먼트와 스틱인베스트먼트 등도 여전히 투자 여력이 남아 있다. 중형급 PEF들도 상당한 규모의 펀드를 결성하면서 준비를 마쳤다. 

      글랜우드PE, JKL파트너스, VIG파트너스, 프리미어파트너스, 프랙시스캐피탈 등의 하우스들이 투자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제네시스PE, KCGI 등이 연이어 출자를 따내며 펀딩이 순항하고 있다.

      LP(기관투자자)들도 기존 투자처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가 주춤하면서 투자 자금이 마련된 상황이다. 올해부터는 출자 사업을 재개하며 계속해서 투자처를 찾고 있다.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은 정부의 유동성 확대 기조에 맞춰 적극적인 출자 활동에 나설 가능성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