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260조 돌파에도 인력 구조는 '공모펀드 시대' 머물러
1인당 평균 20~30개 상품 담당…"버티는 사람으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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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사상 최대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자산운용사 내부에선 운용인력 관련 진통이 점차 커지고 있다. 경쟁 심화로 인해 성과 압박이 커지고 업무 강도는 세지며 핵심인력 이탈은 늘고 있는데, 충원은 더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급성장한 ETF 산업이 여전히 과거 공모펀드 시대의 인력 구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 대형 운용사에서는 올해 들어 ETF 부서에서만 6명 이상의 인력이 이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신규 상장과 리밸런싱 등 핵심 업무를 담당하던 중간 연차급 인력이다. 성과에 비해 보상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고, 휴식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라 이직을 고민하는 인력이 많아졌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5~6년 전까진 ETF 부서를 세팅하고 상품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할 리더급 인력의 이동이 잦았다면, 최근 들어선 실무 인력의 이동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상품 기획 관련 마케팅 부서의 입김이 세지며 현업 운용부서쪽에서 처우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점도 한 몫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1일 기준 국내 ETF 시장 규모는 260조7834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장 ETF 수는 1030여개로 코스피 전체 상장사 수(849곳)보다도 많아진 상황이다. 이 가운데 삼성자산운용(101조1048억원)과 미래에셋자산운용(84조189억원)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운용 상품 수는 각각 222개, 218개에 달한다.
상품 수가 늘어난 만큼 운용역의 업무 강도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매일 자산 재조정(리밸런싱), 유동성공급자(LP) 거래 조율, 기관 고객 대응, 거래소 공시 등 다양한 실무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ETF 운용은 시스템 기반이지만 실제로는 매일매일 대응이 필요한 고강도 업무"라며 "운용사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상품 상장, 운용, 리서치, 마케팅까지 맡는 경우가 많아 체력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성과 중심 문화는 피로를 더욱 키운다는 분석이다. ETF는 거래량과 수익률이 곧 성과 지표가 되기 때문에 대형사일수록 실적 비교가 상시 이뤄지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압박도 커진다.
반면 중간급 매니저 인력은 늘지 않아 한 명이 관리해야 하는 상품 수와 업무 범위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대형사 운용역 경우 한 명이 평균 20~30개 ETF를 관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업무량에 비해 급여의 상승 추는 타 금융업종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산운용업계 차장급 운용역의 연봉은 8000만~9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비슷한 연차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나 호황기 기업금융(IB) 담당 영업역(RM)이 수억 원대 성과급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성과는 시장 최고지만 대우는 평균 이하"라는 불만이 적지 않은 이유다. 한 대형 운용사 매니저는 "올해에만 세네 번 정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며 "ETF 시장 확대를 노리는 중소형사에서도 오퍼가 잦고, 타 업종에선 '고연봉'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TF 인력난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시장 성장 속도를 인력 양성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TF 시장은 2000년대 초 첫 상품이 등장한 이후 20여 년 만에 급팽창했지만, 전문 인력 풀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공모펀드 사업이 사실상 사양화되면서 인력 총량을 늘리기 어렵고,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점도 인력 충원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ETF 부문 보강은 부분 충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남은 인력의 업무 부담은 커지고 있다.
미래에셋운용의 정규직 인원은 2024년 상반기 466명에서 올해 6월 426명으로 8.6% 감소했다. 삼성운용은 같은 기간 389명에서 428명으로 늘었지만, 운용역 수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사 ETF 부문 운용 인력은 20~30명 수준으로, 수백 개 상품을 관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ETF의 성장 속도는 기록적인데, 인력 충원은 여전히 보수적"이라며 "1인당 담당 상품 수가 빠르게 늘면서 유지·관리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ETF 운용 부서는 리밸런싱, 상장 실무, LP 대응, 기관 주문 관리 등 '노동 집약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자동화 시스템이 발전했더라도 시장 변동성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ETF 시장은 겉으로는 자동화된 시스템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일 수십 개 상품의 리밸런싱과 공시, LP 대응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사람 중심의 산업"이라며 "성과 압박과 장시간 근무가 이어지면서 젊은 운용역들이 체력적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말이 현장에서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