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헬스케어 재편…사각편대 구축 속 앞장서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입력 2025.10.28 07:00
    삼성물산은 진단에, 삼성전자는 예방에 초점
    로직스 인적분할 후 헬스케어 사각편대 그림
    김재우·고한승 등 곳곳에 신사업추진단 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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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이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서 인수합병(M&A)과 지분 투자를 비롯한 경영 활동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지 10년만에 이재용 회장의 사법 족쇄가 풀리면서 이런 움직임은 더욱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도 헬스케어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각각 의약품 개발, 생산을 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그룹은 물산-전자-바이오로직스-바이오에피스로 '사각편대'를 구축해 질병의 예방, 진단부터 치료까지 헬스케어 사업 영역을 넓혀나가는 모습이다.

      헬스케어 보폭 넓히는 삼성물산

      삼성물산은 최근 삼성전자와 미국 암 조기 진단 기업 그레일에 투자하며 이 회사의 암 조기 진단 서비스를 국내 독점 유통할 권리를 확보했다. 투자 규모는 1억1000만달러이며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투자 금액을 절반씩 부담한다. 삼성전자는 그레일이 보유한 임상, 유전 데이터를 자사의 헬스케어 플랫폼 '삼성 헬스'에 연계하는 방법을 구상한단 계획이다.

      이번 투자는 삼성물산이 바이오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성물산은 그동안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과 조성한 펀드를 통해 바이오 기업에 투자했을 뿐, 직접적으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진 않았다. 삼성물산 김재우 부사장이 이끄는 생명과학사업전담팀(TF)이 바이오 사업 기회를 엿봤다고만 알려졌다.

      올해를 기점으로 삼성물산은 헬스케어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다. 특히 혈액 검사를 통해 각종 질환을 조기 진단하는 사업에 연달아 투자했다. 이번에 투자한 그레일은 혈액 검사로 암을 조기 발견하는 서비스를 개발한 기업이다. 삼성물산이 올해 1000만달러를 투입한 C2N 디아그노틱스도 혈액 검사로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중심의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을 인수하며 삼성그룹 헬스케어 사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한 준비에 나선 모습이다. 조기 진단, 의약품 개발·생산보다 앞단인 질병의 '예방'에 초점을 맞춰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스마트링 등 기기(디바이스)를 활용해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디지털 기반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기 위한 지분 투자도 지속해서 추진했다. 올해 7월에는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를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미국의 DNA 분석 장비 업체인 엘리먼트 바이오사이언스의 시리즈D 단계 투자 유치에 참여했다. 삼성물산과 함께 진행한 그레일 투자 건 역시 삼성전자가 헬스케어 데이터를 추가로 확보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헬스케어 사업에선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 박헌수 부사장이 이끄는 디지털헬스팀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박헌수 부사장은 미국 의사 출신으로 2020년 삼성전자 미국 법인에 합류했다. 이후 디지털헬스팀장으로 '삼성 헬스' 사업을 맡아왔다. 삼성물산과 함께 투자한 그레일의 임상, 유전 데이터를 활용하는 일도 디지털헬스팀이 나서 실질적인 연계, 결합 방법을 고민할 계획이다.

      삼성 헬스케어 사각편대 움직임

      삼성그룹의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은 바이오의약품에서 질환의 진단부터 치료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그동안은 기존에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사업(CDMO)을 맡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바이오의약품 복제약(바이오시밀러)을 개발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주축으로 바이오 사업을 키웠다. 이젠 삼성물산, 삼성전자가 신규 사업을 추진하며 그룹사의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분할 작업을 마무리하면 이런 사각편대 구조는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두 기업은 의약품 개발과 생산이라는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인적분할을 추진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구개발(R&D) 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로 둬 그동안 고객사로부터 정보 유출의 우려를 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설법인을 설립 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로 넘기는 분할 과정을 밟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등 계열사 곳곳에 바이오 신사업의 기틀을 닦은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은 향후 삼성그룹 바이오 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될 전망이다. 김재우 부사장은 앞서 삼성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 사업을 발굴한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에 몸담았다. 이후 삼성바이오에피스로 자리를 옮기며 고한승 전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과 호흡을 맞췄다. 고한승 전 사장은 현재 삼성전자 신사업을 발굴하는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