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내 수요 2배로 커져도…캐파 대부분은은 전기차용
전력망 보조하는 '완충재' 역할이다 보니 보수적 시각도
셀 3사도 이제 막 LFP 준비중…수혜기업 선별해 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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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핵심 인프라로 조명되자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전방 전기차 시장 부진으로 시름하던 때 새로운 시장이 활로를 터주는 형국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급증하는 ESS 수요도 산업 전체가 당면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거란 분석이 많다. AI 투자 열기에 보폭을 맞출 수 있는 일부 셀·소재 업체들을 제외하면 급하게 올라간 주가 역시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는 10월 들어 보름 만에 50% 이상 올랐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하며 순환매 장세가 이어진 덕도 있지만 AI 작업량(워크로드)에 비례해서 ESS 수요가 늘어난다는 전망이 주된 상승 재료로 파악된다. 국내 2차전지 상장사 주가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대부분도 10월 13일 이후 50~60% 이상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2차전지 업계에선 다소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관측된다. ESS 성장성을 감안해도 한동안은 주가 오름세를 뒷받침할 만한 실적을 내놓기 어려운 탓이다. 국내외 대형 ESS 프로젝트에서 수완을 낼 기업도 아직은 제한적이다. 실무자 사이에선 수혜가 확실시되는 기업과 거품으로 판명날 기업들의 목록이 벌써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조사업체 한 관계자는 "원래 ESS는 전방 완성차 고객사들의 셀 발주에 비해서 규모도 작고 경쟁도 치열해서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시장이었다"라며 "대형 AI 데이터센터(DC) 구축이 늘면서 ESS 시장에도 이제 큰손이 등장하고는 있는데, 당장 전기차 시장과 비교할 단계는 아직 아니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시장 기대감과 업계 내부 판단에 온도차가 있는 셈이다. 늘어날 AI 투자가 어디로 낙숫물을 흘려보낼지 시장이 아직 명확히 선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ESS가 조명받는 구조 자체는 수소 연료전지(SOFC)나 고압전선·변압기 등 여타 전력망 인프라 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속기(GPU) 서버 구축이 늘면서 통상 50MW 안팎이던 DC들이 GW(1000MW) 급으로 대형화하는 추세고 ▲5년 내 미국 전체 전력소비에서 DC 비중이 3%에서 10%까지 늘어날 예정이라 ▲관련 밸류체인 내에서 ESS 중요성이나 설치 수요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는 식이다. 업계에선 보수적으로 따져도 미국 현지 ESS 수요가 5년 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ESS가 AI 산업에 필요한 전력망(grid)에서 보조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블룸에너지의 SOFC처럼 전력 발전, 저장부터 안정적 공급까지 책임질 수 있는 솔루션과 달리 ESS는 주로 만들어진 전력을 안정적으로 저장·공급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AI DC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주 전력원으로 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비상 발전원 정도로 용도가 한정될 수 있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신규 DC를 지을 때 그리드 자체를 신재생 에너지로 구축하는 경우엔 ESS가 상시 전력원에 포함될 수 있지만 그 외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이라며 "그래서 SOFC나 변압기·전선 수요 전망에 비해서 ESS 성장 전망을 다소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 시장 초입이라 AI DC 프로젝트에서 부품원가(BOM코스트)도 구체적으로 발라내서 보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만 ESS 수요가 5년 내 두 배 이상 증가하더라도 절대적인 규모가 전기차 시장이나 업계 전체의 2차전지 생산능력에 비해 협소한 점도 함께 거론된다. 올해 미국 ESS 시장은 약 40GWh로 전체 2차전지 수요에서 20% 이상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이 5년 뒤 80~90GWh 수준으로 커진다는 얘기인데, 내년 연말 기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셀 3사의 현지 생산능력이 약 290GWh 규모로 추정된다. 현지 ESS 수요를 독식한다고 가정해도 결국 나머지 물량은 전기차 시장에서 해소해야 한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도 "완성차 고객사들은 기본 발주 단위가 10년 이상, 20~40GWh 규모였지만 AI DC용이라 해도 ESS가 아직 그 정도 규모는 아니다"라며 "조 단위 ESS 발주가 늘면서 숨통을 트고 있지만 현지에 전기차용으로 깔아둔 셀 생산라인을 다 채우기는 어렵다. 전기차 시장이 정상화하기까지 버틸 시간을 늘려주는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ESS 프로젝트에 필요한 2차전지 화합물이나 셀 구조가 국내 업체들의 주력이 아니기도 하다. AI DC에 들어갈 ESS는 전기차와 달리 무게나 성능보다는 가격이나 안정성, 수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형·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랙 단위로 쌓아 올려 단지 형태로 집적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이다. LG엔솔이나 삼성SDI, 에코프로, 엘앤에프 등 소재사들이 내년부터 현지 양산을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은 시장 수요 일부만을 소화할 수 있는 단계로 풀이된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하면 ESS가 2차전지 산업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지만 아직은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2차전지 기업 전반의 실적도 반도체나 다른 핵심 AI 인프라 기업에 비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는 못하다. 증시 전반의 오름세가 조정에 들어갈 경우 급하게 올랐던 2차전지 부문이 급격한 하락을 마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사 2차전지 담당 한 연구원은 "수년 내 업계 전반이 ESS 수혜를 보겠지만, 지금은 관련 대응 능력을 갖춘 LG엔솔이나 삼성SDI, 일부 소재 업체들로 한정될 테고 이익 규모도 제한적"이라며 "나머지 덩달아 뛴 종목들은 금방 거품이 꺼질 수도 있어서 벌써 불안한 시선들이 많다. 아직은 대체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