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 출자? 관심 없어요"…LP들 주식 대박에 속 타는 PEF들
입력 2025.10.29 07:00
    PEF들 기업투자는 8%, 주식은 20~50% 수익률
    국민연금 출자사업 중단으로 PEF 업계 위축
    정부 국내주식 투자 확대 신호로 우선순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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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 업계가 올해 하반기 들어 투자 환경이 한층 위축된 분위기다.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굵직한 출자자(LP) 대부분이 '주식 우선' 기조를 드러내면서 PEF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국민연금공단(NPS)이 올해 PEF 출자사업을 전면 중단한 것이 가장 큰 분기점으로 해석된다. 일부 기관은 예정대로 하반기 출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다른 연기금과 공제회 실무진 사이에서는 내년 예산 편성에서 PEF 비중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 4000선을 돌파하는 등 증시가 호황인 점과 정부의 국내주식 투자 장려 기조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PEF 출자보다 주식 비중을 늘리는 방안이 우선순위로 떠오른 영향이다.

      A 공제회 관계자는 "대부분 연기금과 공제회 실무진은 지금 PE·VC 출자사업에 관심이 없다. 수익이 나는 곳이 전부 주식 섹터이기 때문"이라며 "주식은 1%만 움직여도 수백억원 규모의 수익 변동이 발생한다. 최근만 해도 일부 기관에서 수백억원 이상의 수익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투자는 잘해야 수익률 8% 안팎이지만, 주식은 통상 10~20% 이상, 올해는 그 배를 넘어간다"며 "그래서 LP들의 최대 화두가 '주식을 어디까지 늘릴 수 있을까'로 쏠린다"고 덧붙였다.

      B 연기금 관계자도 "이미 연간 계획을 세워 놓아 주식 비중을 극적으로 늘리진 않겠지만, 대체투자나 기업투자를 늘리려 하지 않는 내부 기류가 있다"며 "최근 시장에서 '기관들이 순매도하면 개미가 설거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연기금들에 매도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기금과 공제회의 국내 주식 투자 현황도 PEF 업계의 고민을 보여준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경찰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주요 LP들의 국내주식 비중은 최대 10%를 넘지 않고 있다. 이에 일부 연기금은 국내주식 투자 비중을 10% 가까이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하며 내부 회의를 진행 중이다. LP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높은 주식 투자를 더 늘릴 수 있을지가 올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C 연금 관계자는 "주식 위탁운용사들의 실적이 워낙 좋다. 최근에는 대형 PEF보다 쿼드자산운용, VIP자산운용 등 주식 전문사로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PEF업계는 국내 LP들의 투자 심리가 눈에 띄게 위축됐다고 체감한다. 연이은 주식시장 호황과 정부의 주식 투자 장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사태와 차입매수(LBO)에 대한 감독당국 문제 제기 등이 겹치면서 전통적인 기업투자 중심 PEF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한 대형 PEF 임원은 "주식에서 초과수익이 나는 상황에서 굳이 PEF에 자금을 배정할 필요가 줄었을 것"이라며 "일부 회사에서 펀드레이징 일정이 지연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중견 PEF 대표는 "올해보다 무서운 건 내년이다. 내년도 예산 책정에서 대형·중형 PEF 부문을 통합하거나 아예 VC 출자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태도도 PEF 업계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최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사모펀드의 대형 LBO 거래를 둘러싼 여론이 악화되자, 금융당국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관련 구조에 대해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 기조도 변수다. 기획재정부 등 일부 기관에서 국내 주식 투자 확대 신호가 나오면서 기관 운용의 우선순위가 일부 바뀌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LP 실무자는 "시장 상황이 좋은 시점에 주식 비중 확대를 권하는 분위기라 실무진 입장에서는 무시하기 어렵다"며 "내부 규정과 위험 관리 틀을 유지하면서도 수익을 포착하려다 보니 당장은 주식 비중을 높게 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PEF업계는 구조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레버리지 중심 LBO 모델에서 벗어나 자본형 블라인드, 현금흐름형 인프라, 밸류업 중심 투자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 중이다. 

      일부 대형 하우스는 해외 연기금·국부펀드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고, 리캡·세컨더리 전략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늘었다. 다만 이런 변화가 당장 LP들의 출자 의지를 되돌릴지는 미지수다. 

      앞선 운용사 임원은 "PEF의 장기적 가치는 분명하지만, LP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실익이 줄어든 한 단계의 사이클을 넘지 못하면 자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